[글지음][학부모신문] 누구를, 무엇을 위해 규칙은 존재하는가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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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위해 규칙은 존재하는가

 

9월 22일,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에서 서울시 은평구 내 18개 중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83%의 학교에서 인권 침해 조항이 발견됐다. 여전히 많은 학교가 학생들의 용모를 단속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 화장이나 염색, 파마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학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집단행동 선동’, ‘허가 없는 동아리 조직’, ‘불온 문서의 제작·유포·게시·탐독’과 같은 행위를 징계 사유로 두고 있는 학교도 많았다. 실제로 어떤 중학교에서는 ‘허가 없는 동아리를 조직해 교칙을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토끼풀〉 신문 배포 활동을 금지했다고 한다.

 

사실 학생생활규정의 인권 침해와 반민주성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538개 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여전히 60%가 넘는 학교가 용모와 복장을 제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학생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는 학교,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하거나 벌점 조항으로 두고 있는 학교는 총 108개교로 나타났다. 학생회를 포함한 다양한 자치 및 참여 활동을 제도로는 보장하고 있으나 학생 대부분이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학교를 바꾸어 본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고 답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학교 운영, 규칙 제·개정, 동아리나 정치 활동 등에 참여할 권리가 실제 삶에서 와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대하여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반영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시행, 학생 스마트기기 금지 법안 등 학생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의견은 거의 수렴되지 않았고, 심지어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다. 코로나19 시기 등교 시점을 두고 학생 의견 반영 여부를 묻자, 당시 교육부 장관이 “교사와 학부모 의견에 학생 의견도 들어갔을 것”이라고 답한 사례는 학생의 의견이 얼마나 가볍게 취급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교사로부터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학생들은 규칙을 함께 만들거나 바꾸어나가는 주체라기보다는 규칙의 적용 대상으로만 생각된다. 그런 말을 하는 교사는 학생이 자신의 ‘지도행위’를 받아들이고 ‘말대꾸’하지 않게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규칙의 존재 이유가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을 통제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더 힘을 가진 집단에게 말없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라면 독재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지난 8월 26일, 한 아동 양육시설에서 생활하던 16세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소년이 남긴 유서에는 “시설 생활규칙 위반에 따른 벌칙 때문에 힘들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 시설은 오후 10시 이후 휴대전화와 컴퓨터 사용을 금지했는데, 고인은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벌칙을 받은 다음 날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규칙은 왜 존재하는가. 규칙은 무엇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만약 시설을 이용하고 생활하는 청소년들이 생활 규칙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규칙을 주제로 대화할 수 있었거나 바꿀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스스로를 옥죄는 것처럼 느껴지는 규칙을 함께 생활하는 타인과 조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단속당하거나 통제되어야만 하는 삶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사회에서 규칙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절차를 보완하거나, 참여를 보장하면 해결된다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물론 학교든 시설이든, 그곳에서 적용되는 규칙을 만들고 바꿀 때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나아가서 규칙의 존재 이유와 의미 자체에 대하여, 그리고 어떤 규칙이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묻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왜 어떤 규칙은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특정 집단에게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규칙은 언제든 검토되고 바뀔 수 있어야 하며 구성원들의 존엄과 자유를 보장할 목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규칙의 필요성과 의미를 다시 따져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학생과 청소년을 포함한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주체로 참여하여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함께 만들고 같이 지키고 싶은 약속으로 작동할 수 있을 때, 민주적인 학교와 교육도 가능해질 것이다.


-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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