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청소년인권을 말하다] 이동권은 모든 사람의 것, 어린이도 교통 약자입니다

20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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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활동가들이 함께 쓰는 프레시안 [청소년인권을 말하다] 이번 글은 '아동의 이동권'에 대해 썼습니다. 장애운동의 투쟁으로 이동권이 더욱 이슈화된 지금, 모든 사람을 위한 대중교통 환경과 보편적인 권리로서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비장애인'과 '비청소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환경을 바꿔 소수자의 몸과 속도에 맞춰 새롭게 지어갈 세상을 상상하며, 함께 읽어주세요!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저해하는 환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인 등 걸음이 느린 사람에게는 너무 빠르게 바뀌는 보행자 횡단 신호등, 아직도 부족한 저상버스 및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현황,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등의 환경은 '비청소년'이나 '비장애인' 중 이른바 '평균적(이라고 여겨지는) 몸'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도 불편하다. 또 휠체어가 이동할 수 없는 길은 유아차도 다니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태어나서부터 이동권이 가로막히는 사회인 셈이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장애 친화적으로 구성되지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소수자/약자화 된다"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별의별 탐험대' 활동에 함께했던 한 참가자는 "공공장소는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드는데 그 사람에 '아동'도 포함시켜 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린이·청소년이 포함되지 못하며 심지어는 '노키즈존' 등의 이유로 내쫓는 사회, 이렇게 아동 친화적이지 못한 환경은 아동의 독립 이동권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을 위축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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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을 말하다] 이동권은 모든 사람의 것, 어린이도 교통 약자입니다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열 살 즈음이었을까.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이 시절,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던 적이 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같이 가줄 수 없어서 혼자 볼 일을 보러 간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곳이었는데, 출발하기 전에 버스 번호와 정류장 이름을 종이에 써서 갖고 가는 등 단단히 채비를 하고 갔던 기억이 난다.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했던 그날은 내가 기억하는, 처음으로 혼자 한 외출이었다.

그 이후로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혼자서 이동해 본 적은 손에 꼽는다. 어딜 가나 어른들과 함께였고, 학교에는 교사가 같이 있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 때 집 근처, 동네 놀이터를 벗어나 본 적도 거의 없다.

청소년일 때도 다닐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는데 어딘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돈이 없었고, 시간도 없었고, 집에서 통금 시간을 정해두어서 학교나 학원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집, 학교, 학원, 그 외에도 어른들이 정해준 것이 아닌 것들은 허락되지 않는 삶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자 내가 다닐 수 있는 공간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10시간에서 12시간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탈학교 청소년이 되었다. 학생일 때보다는 여러 면에서 여유로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낮에 밖에서 길을 다니고 있다 보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느꼈다. 내가 혼자서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게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어린이·청소년의 이동권 


예전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지난겨울부터 다시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전철 출근길 투쟁을 보면서였다. 장애인운동은 지난 20여 년 동안 모든 장애인이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해왔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고 외치며 수년에 걸쳐 투쟁하여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 장애인 콜택시 운영, 저상버스 도입 등의 변화를 만들었다. 또 '모든 교통수단, 여객 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도록 이동편의시설을 확충, 사람 중심의 교통 체계를 구축'을 명시한 '교통 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도 제정되었다.

이 법에서 '교통 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접하며 어린이·청소년으로서 겪은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불편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 다른 교통 약자인 어린이·청소년들의 이동권은 얼마나 보장되고 있을까? 유럽에는 '어린이의 독립 이동성'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독립 이동성'이란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감독 없이 동네나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2018년에 발간된 '어린이의 독립 이동성(Children’s Independent Mobility)'에 관한 한 논문(Isabel Marzi & Anne Kerstin Reimers)을 살펴보면 "지역 내 독립적 이동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아동이 스스로 다닐 수 있는 아동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한국은 충분히 아동 친화적 환경일까?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2019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지역 사회 곳곳에 있는 아동 차별적인 요소를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해 ‘별의별 탐험대’ 캠페인을 진행했다. ‘별의별 탐험대’는 공공장소에서의 차별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알리는 활동이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별의별 탐험대’ 캠페인 결과를 소개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봐 주세요' 게시물에 따르면, 아동들도 매일 함께 이용하지만 어른들만을 고려해 설계된, 아동 차별적인 요소가 가장 많았던 곳으로 공중화장실, 대중교통, 학교 등이 꼽혔다. 

예를 들어 공중화장실의 세면대와 가방걸이, 변기의 크기와 거울의 높이,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와 입구의 봉, 상점의 진열대와 음식을 주문하는 곳 등 대부분의 시설들이 모두 '어른'의 신체에만 맞춰져 있는 문제가 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어린이에게는 너무 높거나 커서 불편하다. 긴급 전화, 소화기, 비상벨 등도 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다. 이러한 실태를 살펴보니 이 사회의 환경이 얼마나 '비장애인'과 '비청소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은 사람이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데 이 대중교통이 편안하지 않다면 자유롭게 다닐 수 없고,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저해하는 환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인 등 걸음이 느린 사람에게는 너무 빠르게 바뀌는 보행자 횡단 신호등, 아직도 부족한 저상버스 및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현황,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등의 환경은 '비청소년'이나 '비장애인' 중 이른바 '평균적(이라고 여겨지는) 몸'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도 불편하다. 또 휠체어가 이동할 수 없는 길은 유아차도 다니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태어나서부터 이동권이 가로막히는 사회인 셈이다. 


어린이·청소년의 '독립 이동권'이 보장되는 사회 


대중교통이 장애인이나 아동 등에게 친화적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전철이나 버스 안의 '교통 약자석' 표시가 된 자리와 교통 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메시지 정도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분명 교통 약자에 포함되는데도, 자리를 양보하거나 배려받을 대상으로 잘 생각되지 않는다. 때로는 '어리고 젊다'는 이유로 고령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자리 양보가 대중교통 환경 속에서 어려움이나 위험을 겪는 사람들을 고려하는 시민사회의 윤리가 아니라, '노인 공경' 등 예의의 문제로 받아들여진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통 약자석은 과거에는 "경로우대석"이라고도 불렸고 지금도 일부 교통수단에는 "노약자석"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나이주의적 예의 개념이 어린이 등 다양한 교통 약자들의 문제를 지우고 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배려와 시혜적인 선의에 의존해서는 교통 약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 나의 이동할 권리가 타인의 시혜가 있어야만 지켜질 수 있다면 온전한 인권 보장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추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다만 또 한편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교통 약자를 비롯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버스에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탑승할 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혼잡한 차 안에서 장애인이나 환자, 어린이나 임산부가 먼저 안전한 자리와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윤리가 되길 바란다. 나이주의적 예의와 공경 개념에 한정되어 있던 '자리 양보' 문화가, 사회 구조적 소수자를 고려하고, 동료 시민의 취약성을 함께 돌보는 인권친화적이고 연대적인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장애 친화적으로 구성되지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소수자/약자화 된다"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별의별 탐험대' 활동에 함께했던 한 참가자는 "공공장소는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드는데 그 사람에 '아동'도 포함시켜 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린이·청소년이 포함되지 못하며 심지어는 '노키즈존' 등의 이유로 내쫓는 사회, 이렇게 아동 친화적이지 못한 환경은 아동의 독립 이동권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을 위축시키고 있다. 

어딘가를 갈 때마다 누군가의 허락이나 동행이 있어야 하고, 혼자 다니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외출할 때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그냥 외출을 포기하게 되고, 가게에 들어가려 했는데 존재 자체를 이유로 거부당하고, 자신이 필요할 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없는 삶이 지금도 너무 많다.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는 이동의 자유나 여가 활동에 관한 권리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 소수자의 몸과 속도에 맞춰 지어진 공간은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편하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어린이·청소년의 이동권을 통제하고 가로막는 사회는 모든 사람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을 비롯한 모든 공공시설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어린이·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알맞은 구조를 만들 책무가 있다. 장애운동의 투쟁으로 이동권이 더욱 이슈화된 지금, 모든 사람을 위한 대중교통 환경과 보편적인 권리로서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는 지음의 활동가들이 함께 작성하며, '프레시안'을 통해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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