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뚝딱 지음 22호] 공현의 투덜리즘 - "인권운동을 아십니까?"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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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 지음 22호] 공현의 투덜리즘 - "인권운동을 아십니까?"


어느 날, 길에서 포교를 하는 사람들에게 잡힌 적이 있습니다. “기운이 참 맑아 보이시네요.” 라며 서너 명이 말을 걸어온 것이었는데요.(아마 대순진리회 정도였을까요?) 그러면서 저한테 질문을 이어 갔습니다.

“뭐하시는 분이세요? 공부하시나요?”
“아뇨. 어… 인권활동가예요.”
“기운만 보면 더 큰일을 하실 분인데. 대통령도 하실 수 있겠어요.”

처음엔 그냥 적당히 한두 마디 대꾸하고 지나가려 했던 저는 그때 정색을 하고 말았어요. “저는 인권활동가가 대통령보다 더 크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사람들은 약간 당황한 것 같았고, 저는 그렇게 포교에서 벗어나 갈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뭘 그렇게 정색을 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인권활동가를 무슨 제도권 정치의 전 단계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너무나 문제라고 느끼거든요. 그리고 대통령, 국회의원 등이 인권활동가보다 더 훌륭하고 대단하다고 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인권운동/사회운동은 제도권 정치와 다른 독자적 분야이기 때문에 직업으로서 비교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회와 공익에 대한 기여라는 차원만 보더라도, 인권활동가로 활동하는 것이 정치인/선출직으로 일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다고, 제 주관적 기준에선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게 인권활동가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월급이나 대중인지도 정도 아닐까요?

이길보라 님이 칼럼에서 소개한 이런 일화가 떠오르네요. [“여기 계신 활동가분들 모두 국회로 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중략) 그중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소중한 활동가입니다. 함부로 국회로 보내지 마세요.”] (〈더 크게, 더 넓게 목소리를 내자…잃어버린 ‘몫’을 찾기 위해〉, 경향신문, 2021년 8월 23일) 함부로 국회로 보내지 말라고 말한 사람도 바로 지음의 이은선 활동가였습니다. 국회로 보내자, 정치인 되어라 그런 말들 속에는 인권운동이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고 가치 있는 일이며, 그런 일을 하는 활동가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대선과 지선을 연달아 치르면서, 그리고 그 이전 총선 등에서도 한때는 인권운동/사회운동의 활동가였던 사람들이 선거에 뛰어들어서 정당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후보로 출마하고 하는 걸 보면서 별로 마음이 좋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결국 사람들한테 인권운동이 나중에 제도권 정치를 하기 위한 경력 같은 거라고 인식되는 데 일조하겠구나 싶거든요. 저는 여전히 세상엔 정치인이나 선거 출마자는 너무 많고, 활동가는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요구하는 활동보다 권한을 갖고 책임지고 결정하는 역할이 하고 싶어서” 제도권 정치를 하기로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보이더군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매우 화가 납니다. 인권운동은 제도권 정치보다 더 민주적인 권력을 아래에서부터 만들어가고 공유하는 것이고, 우리 사회에 대해 함께 책임지는 것입니다. 어디 정치인 따위가 인권활동가의 권한과 책임과 역할을 폄하하고 정치인이 주권자들보다 더 대단한 역할인 양 비민주적인 발언을 하는 건지?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기가 하던 운동을 작게 만드는 그런 발언은 하지 말아야지요. 인권활동가들부터 우리 운동의 의미와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인권운도...를 아십니까?" / 사진은 2016년 투명가방끈 행사에서 발언 중인 공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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