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가를 내고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영국에는 전에 함께 청소년인권운동을 했던 이가 살고 있어서 2주일동안 함께 지내며 쉴틈 없이 놀았습니다. 출발일 전까지 이런 저런 일들을 마무리 하느라 정작 어떻게 놀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거의 못하고 갔는데, 현지에 아는 이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었습니다.
런던은 상상 이상으로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일단 무단횡단이 불법이 아니어서, 차가 오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길을 건너도 된다고 합니다. 평소엔 친구를 따라서 대충 건넜지만, 저 혼자 돌아다녀야 했던 날에 조금의 연습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늘이 보이는 실외에서는 무조건 흡연 가능’이라는 것이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흡연을 매우 좋아하는 저지만 담배를 피울 때는 언제나 흡연구역 표시나, 암묵적인 흡연구역인 재떨이를 찾거나, 이도 여의치 않으면 구석진 곳,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곳을 찾아 담배를 피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지라, 길을 걸으면서 담배연기를(액상담배든, 아니면 연초든) 내뱉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갈 수 없는 공원은 봤지만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적혀있는 공원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공원에는 어김없이 리드줄을 하지 않은 개들이 반려인의 발치를 벗어나 마음껏 질주하고 있었고, 그냥 주택가에 산책중인 강아지들이 줄에 메여 있지 않은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 날, 아무렇지도 않게 반려인 옆에서 나란히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 지하철을 타던 강아지를 보고도 참 놀랐습니다. 요즈음 강아지들과 함께 살게 된 동료 활동가들이 장거리 이동이 여의치 않아 며칠 전부터 펫택시를 예약하려 동동거리거나 차를 렌트하는 모습들이 떠올라서 참 복잡미묘한 느낌이었습니다.
런던 기차 파업이 있던 날, 서울보다 좋게 말하면 아담하고, 나쁘게 말하면 비좁은 지하철에 구겨지듯이 올라타고 집으로 향하면서, 친구는 ‘그나마 기차 파업이어서 이 정도고 지하철이 파업하는 날은 더욱 카오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종종 있는 파업이 생활의 불편이기에 불평은 하지만 그래서 파업을 하면 안 된다거나, 노동자들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몰상식이라는 인식이라고 합니다.타고 있던 버스가 학교를 지나는 경로여서 하교길의 학생들이 버스에 우르르 올라서 버스가 떠나가라 와글와글 떠들어도, 길가에서 술(혹은 약)에 취한 사람이 허공에 시비를 걸어도, 특이한 복장을 한 그룹이 우르르 지나가도, 연인이 거리 한복판에서 키스를 해도 사람들은 눈치를 주거나 하는 일 없이 자기 일에 열심이었습니다.아무튼 총체적으로 이 동네는 뭔가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번쩍거리고,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동네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단순비교해서 서울보다 런던이 더 좋다거나, 더 옳다고 할 순 없겠지요. 그냥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기에 다른 모습의 도시가 되었을테니까요.
가끔 활동을 하다 보면, 해외의 사례나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참고해야 할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청소년인권이 좀 더 잘 보장될 수 있도록 한 제도나 청소년의 참여, 주체성을 인정하는 문화, 덜 경쟁적인 교육 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시로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으레 돌아오는 반박의 말은 “외국이 하면 다 좋다는 거냐? 이 사대주의자들”이라거나 혹은 “외국 어디어디는 훨씬 더 빡세게 규제하는데 그거는 왜 말 안하냐?”고 합니다. 해당 국가에 사는 한국인들이 “내가 여기 살아서 아는데 여기도 안 좋은 거 많으니까 여기 문화 흉내 낼 필요 없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하구요.당연히 우리는 해외의 사례들이 ‘외국의 것이기 때문에’ 혹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것이기 때문에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단지 청소년인권 친화적인 제도, 문화, 인식의 현실 예를 찾고 참고하자는 것이지요(그리고 그런 것들이 불행히도 한국에는 잘 없기도 하고). 당연히 특정한 나라를 그대로 카피해서 좋은 것도 나쁜것도 몽땅 그대로 하자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청소년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논리들 중에 많은 것들이 “어쩔 수 없다” “옛날부터 그래 왔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라는 말들로 정당화 되어 왔습니다. 이런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논의에 새로운 길을 트기에, 해외 사례는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 중 필요해 보이는 좋은 부분만 골라오거나, 그런 사례들을 기반에 두고 다른 접근과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설득하는 것은 단순히 외국을 동경해서이거나 겉멋이 들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본 짧은 시간동안의 런던은 누군가에게는 좋은 도시이고, 누군가에게는 악몽같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모르던, 새로운 곳에서 머무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새로운 가치관을 만나고 자신이 가져왔던 당연함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가 보지 않은 곳, 처음 보는 것들을 더욱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 '둠코의 기타 등등'이라는 이름은 제목 짓기에서 탈출하고픈 둠코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때로 '기타 등등'은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뜻하기도 하지요. 둠코의 [활동가의 편지]에서는 무언가가 딱 정해지지는 않은, 이것저것, 그때그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활동가의 편지💌] 둠코의 기타 등등
- 외국에 가보니 당연하지 않은 것들
런던은 상상 이상으로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일단 무단횡단이 불법이 아니어서, 차가 오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길을 건너도 된다고 합니다. 평소엔 친구를 따라서 대충 건넜지만, 저 혼자 돌아다녀야 했던 날에 조금의 연습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늘이 보이는 실외에서는 무조건 흡연 가능’이라는 것이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흡연을 매우 좋아하는 저지만 담배를 피울 때는 언제나 흡연구역 표시나, 암묵적인 흡연구역인 재떨이를 찾거나, 이도 여의치 않으면 구석진 곳,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곳을 찾아 담배를 피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지라, 길을 걸으면서 담배연기를(액상담배든, 아니면 연초든) 내뱉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갈 수 없는 공원은 봤지만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적혀있는 공원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공원에는 어김없이 리드줄을 하지 않은 개들이 반려인의 발치를 벗어나 마음껏 질주하고 있었고, 그냥 주택가에 산책중인 강아지들이 줄에 메여 있지 않은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 날, 아무렇지도 않게 반려인 옆에서 나란히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 지하철을 타던 강아지를 보고도 참 놀랐습니다. 요즈음 강아지들과 함께 살게 된 동료 활동가들이 장거리 이동이 여의치 않아 며칠 전부터 펫택시를 예약하려 동동거리거나 차를 렌트하는 모습들이 떠올라서 참 복잡미묘한 느낌이었습니다.
런던 기차 파업이 있던 날, 서울보다 좋게 말하면 아담하고, 나쁘게 말하면 비좁은 지하철에 구겨지듯이 올라타고 집으로 향하면서, 친구는 ‘그나마 기차 파업이어서 이 정도고 지하철이 파업하는 날은 더욱 카오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종종 있는 파업이 생활의 불편이기에 불평은 하지만 그래서 파업을 하면 안 된다거나, 노동자들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몰상식이라는 인식이라고 합니다.타고 있던 버스가 학교를 지나는 경로여서 하교길의 학생들이 버스에 우르르 올라서 버스가 떠나가라 와글와글 떠들어도, 길가에서 술(혹은 약)에 취한 사람이 허공에 시비를 걸어도, 특이한 복장을 한 그룹이 우르르 지나가도, 연인이 거리 한복판에서 키스를 해도 사람들은 눈치를 주거나 하는 일 없이 자기 일에 열심이었습니다.아무튼 총체적으로 이 동네는 뭔가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번쩍거리고,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동네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단순비교해서 서울보다 런던이 더 좋다거나, 더 옳다고 할 순 없겠지요. 그냥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기에 다른 모습의 도시가 되었을테니까요.
가끔 활동을 하다 보면, 해외의 사례나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참고해야 할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청소년인권이 좀 더 잘 보장될 수 있도록 한 제도나 청소년의 참여, 주체성을 인정하는 문화, 덜 경쟁적인 교육 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시로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으레 돌아오는 반박의 말은 “외국이 하면 다 좋다는 거냐? 이 사대주의자들”이라거나 혹은 “외국 어디어디는 훨씬 더 빡세게 규제하는데 그거는 왜 말 안하냐?”고 합니다. 해당 국가에 사는 한국인들이 “내가 여기 살아서 아는데 여기도 안 좋은 거 많으니까 여기 문화 흉내 낼 필요 없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하구요.당연히 우리는 해외의 사례들이 ‘외국의 것이기 때문에’ 혹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것이기 때문에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단지 청소년인권 친화적인 제도, 문화, 인식의 현실 예를 찾고 참고하자는 것이지요(그리고 그런 것들이 불행히도 한국에는 잘 없기도 하고). 당연히 특정한 나라를 그대로 카피해서 좋은 것도 나쁜것도 몽땅 그대로 하자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청소년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논리들 중에 많은 것들이 “어쩔 수 없다” “옛날부터 그래 왔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라는 말들로 정당화 되어 왔습니다. 이런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논의에 새로운 길을 트기에, 해외 사례는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 중 필요해 보이는 좋은 부분만 골라오거나, 그런 사례들을 기반에 두고 다른 접근과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설득하는 것은 단순히 외국을 동경해서이거나 겉멋이 들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본 짧은 시간동안의 런던은 누군가에게는 좋은 도시이고, 누군가에게는 악몽같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모르던, 새로운 곳에서 머무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새로운 가치관을 만나고 자신이 가져왔던 당연함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가 보지 않은 곳, 처음 보는 것들을 더욱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 '둠코의 기타 등등'이라는 이름은 제목 짓기에서 탈출하고픈 둠코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때로 '기타 등등'은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뜻하기도 하지요. 둠코의 [활동가의 편지]에서는 무언가가 딱 정해지지는 않은, 이것저것, 그때그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 [뚝딱 지음] 32호 전체 보기 https://stib.ee/z2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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