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삶의 대부분을 광주광역시에서 보냈고, 2010년 청소년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진 서울(수도권)에 거의 가본 적이 없었어요. 활동을 기점으로, 회의나 기자회견, 캠페인, 집회, 총회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가기 시작했죠. 과연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 곳이니 활동가들 역시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걸까 생각했어요. 사람이 부족한 곳이 시민단체이고, 청소년운동은 한 줌도 안 된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서울은 비수도권과 달랐어요. 의료, 문화, 교육 등 각종 사회 기반 시설들만 집약되어 있는 게 아니라 운동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고민들이 모였고, 활발한 논의들이 이어졌고, 많은 담론들이 생산되더라고요.
광주라는 우물에서 잠깐 발을 빼본 경험을 한 저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제 고민은 얕았고,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지배문화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니까요. 때론 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들의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 저에게는 운동을 알려줄 사람,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고민을 풍부하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자리들이 필요했죠. 하지만 주변에 그런 걸 알려줄 사람은 없다시피 했고, 관련한 네트워크도 부족했고, 가끔 강연회에 가면 내용은 마음에 안 든데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저를 기특한 학생으로 볼 뿐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나누면서 속상함을 털어내고 문제제기를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들을 만드는 데에는 지역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동료가 없던 그 시절, 저는 제 고민과 맞닿아 있는 교육이나 자리들이 서울에만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아쉬움을 삼키곤 했으니까요.
그런 인식의 연속 때문이었을까요? 저의 운동적 성장은 광주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다른 지역 활동가들의 고민과 논리가 담긴 글들을 생각하면서 나아갔고, 쌓인 고민들은 주로 수도권의 청소년인권활동가들과 팀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그들을 만나는 뒤풀이 자리나 사석에서 풀어나갔어요. 물론 그 장소는 대부분 서울이었죠. 여러 사람들이 모이지만, 움직이는 건 비수도권 활동가. 그건 정말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가장 큰 이유는 단체의 경제적 열악함 때문이었는데, 돈을 아끼면서 운동을 하려면 차비는 한 명이라도 덜 드는 게 좋으니까 소수인 비수도권 쪽에서 움직이는 거죠. 자연스럽게 저는 제 시간을 양보하는 데 익숙해졌고, 광주와 서울의 대중교통 시간과 고속버스 왕복 시간을 포함해 8시간을 넘게 이동시간에 썼어요. 언젠가 이런 문화들에 비수도권 활동가들이 서울(수도권) 중심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장거리 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등 버스나 KTX를 탈 수 있도록 한다든지, 회의 장소는 대전, 혹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번갈아가면서 정한다든지 해결 방법을 모색하곤 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서울보다 비수도권에서 행사나 모임을 더 많이 진행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아가는 모습이었죠.
그리고 저는 오래 활동한 단체에서 지음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저는 제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자리들을 포기할 수 없었고, 서울과 광주를 오가다 지음의 상임 활동을 하기 위해 마침내 서울로 이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니, 세상에 내가 서울 활동가라니! 종종 서울로 이사하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서울 중심주의자라고 큰소리치며 깔깔거렸는데 저도 똑같다는 생각에 아주 창피한 요즘입니다. 단체의 재정적 상황이 여유로워지면 비수도권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해보거나 모임을 늘려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청소년운동의 힘이 커지고 나면 동료 활동가들에게 비수도권으로 가서 청소년운동을 키우자고 꼬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더 많은 지역에, 더 많은 청소년인권의 논리를 공유하고, 더 많은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네트워킹하는 뇌내망상을 하니 괜시리 즐거워지네요. 당장은 후원 금액이 늘어서 서울의 익숙함에 균열을 줄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질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활동가의 편지💌]
빈둥의 둥망진창 둥리둥절 이야기
- 내가 서울 활동가라니!
저는 삶의 대부분을 광주광역시에서 보냈고, 2010년 청소년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진 서울(수도권)에 거의 가본 적이 없었어요. 활동을 기점으로, 회의나 기자회견, 캠페인, 집회, 총회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가기 시작했죠. 과연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 곳이니 활동가들 역시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걸까 생각했어요. 사람이 부족한 곳이 시민단체이고, 청소년운동은 한 줌도 안 된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서울은 비수도권과 달랐어요. 의료, 문화, 교육 등 각종 사회 기반 시설들만 집약되어 있는 게 아니라 운동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고민들이 모였고, 활발한 논의들이 이어졌고, 많은 담론들이 생산되더라고요.
광주라는 우물에서 잠깐 발을 빼본 경험을 한 저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제 고민은 얕았고,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지배문화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니까요. 때론 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들의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 저에게는 운동을 알려줄 사람,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고민을 풍부하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자리들이 필요했죠. 하지만 주변에 그런 걸 알려줄 사람은 없다시피 했고, 관련한 네트워크도 부족했고, 가끔 강연회에 가면 내용은 마음에 안 든데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저를 기특한 학생으로 볼 뿐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나누면서 속상함을 털어내고 문제제기를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들을 만드는 데에는 지역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동료가 없던 그 시절, 저는 제 고민과 맞닿아 있는 교육이나 자리들이 서울에만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아쉬움을 삼키곤 했으니까요.
그런 인식의 연속 때문이었을까요? 저의 운동적 성장은 광주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다른 지역 활동가들의 고민과 논리가 담긴 글들을 생각하면서 나아갔고, 쌓인 고민들은 주로 수도권의 청소년인권활동가들과 팀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그들을 만나는 뒤풀이 자리나 사석에서 풀어나갔어요. 물론 그 장소는 대부분 서울이었죠. 여러 사람들이 모이지만, 움직이는 건 비수도권 활동가. 그건 정말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가장 큰 이유는 단체의 경제적 열악함 때문이었는데, 돈을 아끼면서 운동을 하려면 차비는 한 명이라도 덜 드는 게 좋으니까 소수인 비수도권 쪽에서 움직이는 거죠. 자연스럽게 저는 제 시간을 양보하는 데 익숙해졌고, 광주와 서울의 대중교통 시간과 고속버스 왕복 시간을 포함해 8시간을 넘게 이동시간에 썼어요. 언젠가 이런 문화들에 비수도권 활동가들이 서울(수도권) 중심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장거리 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등 버스나 KTX를 탈 수 있도록 한다든지, 회의 장소는 대전, 혹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번갈아가면서 정한다든지 해결 방법을 모색하곤 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서울보다 비수도권에서 행사나 모임을 더 많이 진행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아가는 모습이었죠.
그리고 저는 오래 활동한 단체에서 지음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저는 제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자리들을 포기할 수 없었고, 서울과 광주를 오가다 지음의 상임 활동을 하기 위해 마침내 서울로 이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니, 세상에 내가 서울 활동가라니! 종종 서울로 이사하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서울 중심주의자라고 큰소리치며 깔깔거렸는데 저도 똑같다는 생각에 아주 창피한 요즘입니다. 단체의 재정적 상황이 여유로워지면 비수도권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해보거나 모임을 늘려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청소년운동의 힘이 커지고 나면 동료 활동가들에게 비수도권으로 가서 청소년운동을 키우자고 꼬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더 많은 지역에, 더 많은 청소년인권의 논리를 공유하고, 더 많은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네트워킹하는 뇌내망상을 하니 괜시리 즐거워지네요. 당장은 후원 금액이 늘어서 서울의 익숙함에 균열을 줄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질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 ‘빈둥의 둥망진창 둥리둥절 이야기’는 빈둥과 엉망진창, 어리둥절을 결합해서 짓게 된 이름이에요.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어리둥절 해온 시간, 그 속에서 켜켜이 담아온 여러 고민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 [뚝딱 지음] 35호 전체 보기 https://stib.ee/Le17
🔸 소식지 [뚝딱 지음] 구독하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14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