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합법화의 시대, 왜 청소년의 몸은 여전히 금지되는가
7년 전 나는 만 18세의 청소년이었다. 타투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타투샵에 문의를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미성년자는 받지 않는다.” 그 당시에도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타투를 시술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청소년만’을 시술하지 않겠다는 기준은 묘하게 일관되었다. 이미 불법인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은 ‘이중으로 금지’되고 있었다. 왜 청소년의 타투만 ‘더 큰 금기’로 여겨졌을까. 결국 나는 실력이 검증된 샵에서 시술을 받을 수 없었다. 대신 막 타투이스트 일을 시작한 지인을 통해 몰래 시술을 받았고, 타투는 번지고 망가졌다. 그나마 다른 사람이 조금 수정해 주었지만 완벽히 고칠 수는 없었다. 청소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타투를 포기하거나, 더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을 감수하는 것. 금지의 논리는 결국 청소년을 더 위험한 선택으로 내몰 뿐이다.
2025년 9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문신사법」은 한국 사회에서 ‘타투 합법화’라는 상징적 전환점을 남겼다. 1992년 대법원 판결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불법으로 간주된 지 33년 만의 변화였다. 앞으로는 비의료인도 국가가 시행하는 ‘문신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예술과 범죄의 경계에 있던 타투가 제도적 틀 안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의 와중에도 여전히 청소년의 몸에 대한 통제의 시선이 남아 있다. 새 법에서도 ‘미성년자’는 시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즉, 성인만이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길 ‘자격’을 인정받는다. 청소년이 문신을 하면 ‘일탈’이나 ‘불량’으로 규정되고, 학교에서는 징계 사유가 되기도 한다. 문신이 표현의 자유이자 자기결정권의 문제인데도, 청소년의 몸은 여전히 국가와 학교, 부모의 관리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제 타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미용과 관리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눈썹 문신을 했고, 많은 시민들이 입술·헤어라인 문신 등 반영구 화장을 받는다. 이 모두가 ‘타투’다. 타투는 이미 일상의 미용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럼에도 유독 청소년의 타투만이 “일탈”이나 “불량”으로 낙인찍힌다. 같은 행위가 나이에 따라 다른 의미로 평가받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미성숙하다고 단정하며, ‘보호’라는 이름으로 선택의 권리를 박탈해 왔다. 타투뿐 아니라 복장, 염색, 휴대전화, 연애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어른 되면 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종종 ‘기다림’이 아니라 ‘금지’를 의미한다. 타투의 영구성을 이유로 청소년의 결정을 미성숙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타투의 특성은 충분히 설명되고 안내될 수 있으며, 결정의 주체는 시술을 받는 사람 자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할 수 있다. 그러나 후회의 가능성이 선택을 금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중에 후회할 거야”라는 말은 사실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사회의 선언과 다르지 않다. 사회가 편견을 유지하는 한, 청소년은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타투는 위생적인 환경과 사후 관리가 갖춰진다면 그 자체로 위험한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입법 논의의 핵심도 ‘금지’가 아니라 ‘안전한 관리’에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 금지 조항은 오히려 청소년을 제도의 보호 밖으로 밀어낸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이지,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다. 자신의 몸에 관해 결정할 수 있도록 위생과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보호의 진정한 형태다. 「문신사법」 제정은 분명 진전이지만, 청소년을 배제한 합법화는 절반의 진보에 불과하다. ‘청소년 금지’가 존재하는 한, 타투는 특정 연령층만의 권리로 남는다. 타투를 멋이나 반항으로만 해석하는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단지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너무도 기본적인 자유”일 뿐이다. 청소년의 선택을 존중하는 제도만이 진정한 의미의 ‘타투 합법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타투 합법화의 시대, 왜 청소년의 몸은 여전히 금지되는가
7년 전 나는 만 18세의 청소년이었다. 타투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타투샵에 문의를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미성년자는 받지 않는다.” 그 당시에도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타투를 시술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청소년만’을 시술하지 않겠다는 기준은 묘하게 일관되었다. 이미 불법인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은 ‘이중으로 금지’되고 있었다. 왜 청소년의 타투만 ‘더 큰 금기’로 여겨졌을까. 결국 나는 실력이 검증된 샵에서 시술을 받을 수 없었다. 대신 막 타투이스트 일을 시작한 지인을 통해 몰래 시술을 받았고, 타투는 번지고 망가졌다. 그나마 다른 사람이 조금 수정해 주었지만 완벽히 고칠 수는 없었다. 청소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타투를 포기하거나, 더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을 감수하는 것. 금지의 논리는 결국 청소년을 더 위험한 선택으로 내몰 뿐이다.
2025년 9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문신사법」은 한국 사회에서 ‘타투 합법화’라는 상징적 전환점을 남겼다. 1992년 대법원 판결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불법으로 간주된 지 33년 만의 변화였다. 앞으로는 비의료인도 국가가 시행하는 ‘문신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예술과 범죄의 경계에 있던 타투가 제도적 틀 안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의 와중에도 여전히 청소년의 몸에 대한 통제의 시선이 남아 있다. 새 법에서도 ‘미성년자’는 시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즉, 성인만이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길 ‘자격’을 인정받는다. 청소년이 문신을 하면 ‘일탈’이나 ‘불량’으로 규정되고, 학교에서는 징계 사유가 되기도 한다. 문신이 표현의 자유이자 자기결정권의 문제인데도, 청소년의 몸은 여전히 국가와 학교, 부모의 관리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제 타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미용과 관리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눈썹 문신을 했고, 많은 시민들이 입술·헤어라인 문신 등 반영구 화장을 받는다. 이 모두가 ‘타투’다. 타투는 이미 일상의 미용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럼에도 유독 청소년의 타투만이 “일탈”이나 “불량”으로 낙인찍힌다. 같은 행위가 나이에 따라 다른 의미로 평가받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미성숙하다고 단정하며, ‘보호’라는 이름으로 선택의 권리를 박탈해 왔다. 타투뿐 아니라 복장, 염색, 휴대전화, 연애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어른 되면 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종종 ‘기다림’이 아니라 ‘금지’를 의미한다. 타투의 영구성을 이유로 청소년의 결정을 미성숙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타투의 특성은 충분히 설명되고 안내될 수 있으며, 결정의 주체는 시술을 받는 사람 자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할 수 있다. 그러나 후회의 가능성이 선택을 금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중에 후회할 거야”라는 말은 사실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사회의 선언과 다르지 않다. 사회가 편견을 유지하는 한, 청소년은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타투는 위생적인 환경과 사후 관리가 갖춰진다면 그 자체로 위험한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입법 논의의 핵심도 ‘금지’가 아니라 ‘안전한 관리’에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 금지 조항은 오히려 청소년을 제도의 보호 밖으로 밀어낸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이지,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다. 자신의 몸에 관해 결정할 수 있도록 위생과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보호의 진정한 형태다. 「문신사법」 제정은 분명 진전이지만, 청소년을 배제한 합법화는 절반의 진보에 불과하다. ‘청소년 금지’가 존재하는 한, 타투는 특정 연령층만의 권리로 남는다. 타투를 멋이나 반항으로만 해석하는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단지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너무도 기본적인 자유”일 뿐이다. 청소년의 선택을 존중하는 제도만이 진정한 의미의 ‘타투 합법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