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학부모신문] ‘돌봄 받을(받지 않을) 자유’의 공백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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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받을(받지 않을) 자유’의 공백

빈둥(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아이 돌봄 서비스 국가 무한책임 보장’, ‘아이 돌봄 스테이션 설치’, ‘온동네 초등 돌봄 확대’ 등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어린이·청소년 돌봄에 관한 공약을 발표했다. 대개 저출산, 고령화 등에 대한 대책으로, 양육자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고, 양육자들이 일하는 시간에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어린이·청소년을 돌보는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많은 이들에게 ‘돌봄’이니까 괜찮은 것,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동안 ‘돌봄의 윤리’를 강조하는 논의는 돌봄을 그 자체로 무조건 좋은 것이라 여겨 왔지만, 오히려 그 규범성과 맹목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아 왔다. 이후 돌봄을 인권 쪽으로 접근하면서, 돌봄의 권리는 사회적 권리로서 돌봄 할 권리와 돌봄 할 것을 강제 받지 않을 권리,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을 강제 받지 않을 권리가 함께 성립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러한 논의들은 돌봄을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돌봄이 어떤 맥락에서 좋은 것이 되는지 아니면 강제나 억압이 되는지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돌봄의 권리에서 중요한 것은 (돌봄을 받는) 당사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경청하며, 의견을 반영하는 등 당사자가 돌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 공약들도 그렇고 한국 사회 대부분의 어린이·청소년 관련 제도와 사회 보장 정책은 어린이·청소년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고 이들을 키우는 대상, 관리하는 대상으로만 다룬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저출산 고령사회 위원회에서 연 ‘보육·돌봄 정책 전문가 간담회’나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국가기관 주관으로 종종 시행하는 양육자 대상 자녀 돌봄정책 간담회, 초등 돌봄교실에 대한 만족도 조사까지, 돌봄 내용을 채워 가는 많은 자리와 논의는 전문가와 양육자 등 어른 중심으로, 돌봄을 하는 이의 필요로 만들어진다. 돌봄을 받는 이의 권리들은 공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어린이·청소년은 직접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우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봄의 내용은 돌봄 받는 이의 능력과 별개로 당사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이어야 하고, 당사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당사자가 최대한 권리 행위 능력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양육자의 형편을 고려해서 운영하는 돌봄교실이 돌봄을 받는 쪽에서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이들이 원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돌봄 환경을 갖춰 나가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돌봄 하는 이의 요구만이 아니라 돌봄 받는 이의 경험과 정보와 요구를 사회적으로 충분히 공유하고 돌봄을 받는 이들에게 돌봄의 권리와 정보에 대해 알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좋은 돌봄은 돌봄 관계에 있는 모두가 만족하는 것이지만, 돌봄은 상호 행위이기에 각자의 요구가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봄을 받는 이의 의견을 먼저 반영할 수 있도록 전 사회적으로 인식을 개선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는 불균형하다. 양육자는 돌봄 하는 것을 스스로 그만둘 수 있지만, 어린이·청소년은 돌봄 받기를 그만둘 수 없다. 이러한 관계는 권력 관계로 바뀌기 쉽고 돌봄 관계의 맥락과 가족 내 지배와 나이와 성별 등 사회적 속성이 결합해 억압과 강제와 차별이 일어나기 쉽다. 양육자의 말에 따르지 않는 자식이 매를 맞는 것이 쉽게 용인되는 문화처럼 말이다. 돌봄 과정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불평등과 차별들을 살피고, 어린이·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노력을 함께 할 때 어린이·청소년이 돌봄을 받을 (받지 않을) 자유는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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