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청소년인권을 말하다] "요즘은 많이 안 때린다", "옛날엔 말이야"라는 것들에 대하여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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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이 안 때린다", "옛날엔 말이야"라는 것들에 대하여

[청소년인권을 말하다] 왜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가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옛날 같았으면 학부모 소환에 매타작이었겠지만 요즘 학교는 그렇지 않다. 체벌이 사라지고 학생들의 인권이 강화되었다. 홍서린도 신체적 폭행은 반대한다. 하지만 미성숙한 청소년의 잘못을 모른 척 넘어가기보다는 학생들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고자 처벌을 개발하였다. (...) 앉았다 일어나기를 해야 한다." <파멸일기>, 윤자영 씀, 몽실북스, 2020


2020년에 출간된 장편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소개 글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지만 위 문단을 읽고서 책을 덮었다.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용한 부분은 소설 속 등장인물인 교사가 수업 시간에 만화책을 본 학생의 행동을 지적하며 학생에게 벌을 주기 위해 '반성의 행동'이라는 이름의 벌, 즉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라고 시키는 장면이다. 소위 '기합'이나 '얼차려'라고 부르기도 하는 '엎드려뻗쳐', '앉았다 일어났다', '오리걸음 걷기' 등은 대표적 '간접 체벌(도구나 신체로 때리지 않는 유형의 체벌)'에 포함되는 행위이다. 문제는 등장인물이 '신체적 폭행'에는 반대한다고 하면서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처벌'인 간접 체벌이 이루어지는 이 장면이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서술되는 것이다.


옛날보다 좋아졌다는 말


사실 "옛날에는 학교에서 체벌과 같은 폭력이 심했지만 요즘 학교는 많이 달라졌다"라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20-30년 전의 학교와 비교하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체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쉽게 잊는 것 같다. 2020년 2월에 발표된 서울 학생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학생의 약 42%, 고등학생의 약 27.4%가 '간접 체벌'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신체적 폭행' 경험도 중고등학생의 각각 28.6%, 22%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코 적지 않다.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인 서울 지역의 실태가 이런데 다른 지역은 어떨까. 사실상 지금도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체벌을 당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짚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최근에는 때리는 일이 예전만큼 흔하지 않다고 해서 과거에 있었던 체벌 폭력의 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는 말은 마치 지금은 안 때리니까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에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회초리로 때리는 장면이나 부모가 자녀를 혼내며 집에서 쫓아내는 장면이 등장할 때가 있다. 라디오에서는 옛날 추억을 나누는 코너에서 종종 어린 시절에 당한 체벌과 단체 기합 등을 포함한 폭력들, 집에서 외출 금지를 당한 경험과 같은 사연이 전파를 타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대중 매체에서 과거의 폭력을 말할 때 "지금은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흔한 일이었지요"라는 식으로 덧붙이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때릴 수 있었을 때가 더 좋았다는 듯이 과거의 체벌 폭력을 미화하는 발언도 심심찮게 들린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어요. 예전 같았으면… 이젠 때릴 수도 없고 말이에요." 식으로 말하며 웃거나 체벌 금지에 대해 툴툴대는 경우도 많다.


반면 체벌이 인권침해이며 잘못된 일이었다는 말과 어린이·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기로 했다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세월이 흘러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일인 것처럼 다루곤 한다. 요즘도 방송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무릎 꿇고 손들고 있게 하는 식의 벌을 준다던가,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혼낸다던가, 교복 입은 학생의 모습을 한 출연자를 때리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 종종 나오지만 그게 문제라는 언급은 거의 없다. 대부분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넘어간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폭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왜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를 찾아보기 힘들까


"...모두가 체벌 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였습니다. 이들에게 사과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체벌 폭력에 대해 어떤 보상과 지원을 약속받았습니까? 재발 방지를 위해 마련된 장치는 무엇입니까?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한 분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하고 마감된 삶에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동일한 폭력이 반복되지 않음이 곧 문제 해결은 아니기에, '이제 일본군이 여성을 끌고 가는 일은 없지 않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체벌에 대해서는 '이제 때리는 교사(부모)는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그토록 강력할까요." <체벌 거부 선언>, 이희진 외 씀, 교육공동체 벗, 2019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는 바뀌어왔다. 학교에서의 체벌은 20-30년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으며, 최근에는 부모에 의한 자녀 체벌을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로 해석되기도 한 민법 915조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는 등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사회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사랑의 매'란 없으며, '맞을 짓'도 없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가정과 학교에서 체벌은 벌어지고 있으며 많은 대중 매체에서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체벌이 미화되거나 경시되는 경우도 잦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정도면 많이 좋아졌지' 하고 넘어가곤 한다. 우리 사회가 정말 체벌이 잘못이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대충 퉁 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사실 한국에서 어린 시절 당한 체벌 폭력은 아주 보편적인 피해 경험이다. 맞지 않고 자란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흔한 경험이다. 그때는 잘못인 줄 몰랐을 수도, 다들 그렇게 하니까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 철저한 사회적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야말로 정부가 과거의 문제를 명확하게 짚으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차례이다.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하더라도 국가와 정부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으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 버릴 가능성이 크다. 가정과 학원에서의 체벌도 문제이지만 특히 공교육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체벌은 여지없이 국가의 책임이다. 체벌은 국가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청소년에게 가해왔고 묵인해왔으며 때로는 대놓고 허용해온 폭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법과 정책을 바꾸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지 말라.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죄해야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변화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는 지음의 활동가들이 함께 작성하며, '프레시안'을 통해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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