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1991년 투쟁과 고등학생운동 30주년 ③ - 91년 속 고등학생운동의 존재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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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투쟁과 고등학생운동 30주년 ③

- 91년 속 고등학생운동의 존재 


“지금 노태우 정권도 전두환 군사 독재와 다름이 없다. 왜냐면 참교육을 실천하고 학생들의 인성 교육과 민주화를 위해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을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전두환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고 노태우는 교육을 대학살하고 있다.”

강경대 열사가 1989년 5월, 고등학생 시절에 쓴 일기의 내용이라고 합니다.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그리고 김철수 열사도 고등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었죠. 열사들뿐만 아니라, 1991년 투쟁에서는 고등학생운동의 존재와 관련된 사건의 경험과 영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거리 집회에서는 고등학생운동 조직들이 깃발을 들고 대오를 갖춰 참여했고, 노태우 정권 퇴진, 참교육 요구 등에 이어 “고등학생 정치활동 쟁취”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김철수 열사의 분신 이후 ‘광주 고교생 결의 대회’가 열려 입시 교육 개선과 참교육 실현을 촉구하기도 했고요.

투쟁이 위축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6.3 외대 사건(1991년 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이 강사로 출강하던 한국외대에서 강의했을 때, 대학생들이 물리력 행사를 포함해 집단항의한 사건)도 그렇습니다. 대학생들이 정원식에게 격렬한 항의를 한 이유는, 그 당시 상황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경찰폭력에 의해 김귀정 열사가 죽은 직후였던 점도 있으나, 정원식이 전교조 교사들을 대량 해직시킨 책임자였다는 점이 컸습니다. 대학생들은 교내 방송을 통해 “전교조 선생님들을 학살한 정원식이 지금 우리 학교에 와있습니다”라고 알렸고 정원식을 “전교조 선생님과 강경대, 김귀정이를 죽인 살인마”라고 규탄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고등학생이었을 적 전교조 교사들이 대량 해직당하는 일과 이에 항의하는 투쟁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외대 사건 이후 언론은 ‘스승을 폭행하는 제자’, ‘패륜적 운동권’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투쟁을 공격했습니다. 이런 공격이 가능했던 것은 나이주의와 권위주의, ‘군사부일체’론 등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교육과 교육민주화를 외치던 전교조 교사들을 학교에서 내쫓은 것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는 전혀 이해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1991년 당시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도입 등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삶에 민주주의나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과 불안이 컸던 상황이었습니다. 청소년들도 변함없이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현장에서 교육 개혁과 교육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 절실함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운동에 나선 청소년들을 불온한 사상 혹은 세력에 세뇌당한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하는 시선과 전방위적 탄압도 강고했습니다. 1991년 투쟁이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제대로 그 의의를 인정받지 못했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 투쟁의 배경에 있던 고등학생운동과 청소년 주체들의 존재가 제대로 인정받고 해석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1991년 투쟁 30주년을 맞아, 우리가 이 역사를 읽어내고 기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고등학생운동과 청소년을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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