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뚝딱 지음 41호] 둠코의 기타 등등- 생활동반자법, 청소년에게는 유예된 가족구성권?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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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편지💌] 둠코의 기타 등등

- 생활동반자법, 청소년에게는 유예된 가족구성권?



얼마 전 국회에 가족구성권 3법이 발의되었습니다. 지음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결혼으로 묶인 이성+아동 등의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의도는 매우 좋은 법률이라 생각합니다만, 법률 초안을 보고 ‘역시나 그렇지..’하며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동/청소년이 법률에 바랄 수 있는 게 언제나 별로 없긴 했지만, ‘미성년자’는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명시가 되어있는 법률 조문을 보고 나면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제외하면 아동과 청소년은 이 법률 안에서 누군가의 ‘자녀’, ‘양육 대상’으로만 등장합니다. 더욱 자유로운 방식의 관계맺음을 상상하고 선택 가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생활동반자법이, 사실 아동 청소년에게는 구태의연한 가족제도와 한치도 다르지 않고, 여전히 청소년의 선택지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 생활동반자법 이외에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법률이 아동/청소년을 자신의 의사를 가지고 행위할 수 없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은 혼자 생활할 만큼 돈도 벌지 못하고, 영유아기 때는 당연히 자기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데, 양육자가 있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어릴 때 독립할 생각을 하다니, 반항이나 하고 철이 없거나 부모가 학대를 했나보네.. 불쌍하다..” 아동/청소년기에 자신의 삶을 혼자 꾸리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에 대해, 사회는 대개 이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갑자기 내일부터 모든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장하기는 힘든 노릇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원가정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미 존재하고, 이들에게도 사회적 보장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탈가정 청소년들이 쉼터 등의 제도에 편입되지 않고 서로 모여 사는 모습을 흔히들 ‘가출팸’이라 부릅니다. 범죄의 온상이라던가, 성매매 강요 등의 수식어를 덧붙이면서 서로 착취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해체시켜서 원가정으로 돌려보내고, 혹은 국가가 마련한 청소년시설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가장 흔합니다. 만약 ‘가출팸’을 부정적이게 보지 않고, 해체해서 시설에 가두려 하지 않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생활을 지원하면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주거, 기초 생활 안정을 위한 비용지원을 하고, 구직이나 학업 등에 대한 안내를 하고, 법정대리인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고, 사례관리를 하는 사회복지사가 가끔 방문해서 피드백을 주고받는 제도가 있다면(위탁가정, 혹은 그룹홈처럼 상시 비청소년의 감시하에서 구속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선택권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불쌍하니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사회가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존재해서, 비단 기존의 ‘가출팸’만이 아니라, 원가정 이외의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이런 옵션들이 흔히 고려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요. 이런 걸 허용하면 비행과 방탕함의 극치일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그런 사람들은 이성애 정상가족이 아닌 동성커플, 친구끼리 사는 가족, 1인가구 등 정상성에서 벗어난 어떤 형태의 가족을 봐도 혀를 찰 사람들이니, 이들을 설득하는 건 무의미할 것 같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혼자 통제하고, 관리, 부양할 수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청소년 비청소년을 나누지 않아도,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자기 앞가림을 하며 산다는 것은, 나이에 상관 없이 그 누구에게나 힘듭니다. 그걸 다른 가족 구성원과 같이 하든, 혼자하든 상관 없이요. 아동/청소년은 상대적으로 살아온 기간이 짧기에 더욱 경험과 시간,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양육자’ 아래 딸림 존재로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지원과 탄탄한 사회 안전망 확보의 이유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요. 법 체계가 이런 상상들을 따라오는 데에는 시간이 매우 걸리겠지만, 이런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가고 싶습니다.


🔸 '둠코의 기타 등등'이라는 이름은 제목 짓기에서 탈출하고픈 둠코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때로 '기타 등등'은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뜻하기도 하지요. 둠코의 [활동가의 편지]에서는 무언가가 딱 정해지지는 않은, 이것저것, 그때그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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