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11시,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 거부 교사 단체 기자회견에 다녀왔습니다.
뙤약볕에서도 많은 분들이 현재 교육 제도와 정책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민주주의 실천을 요구하였습니다.
책임활동가 공현 님의 기자회견 발언문과 기자회견문 전문을 올립니다.
[기자회견 발언문]
서울 한 초등 교사의 죽음 이후, 채 사흘도 지나지 않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꺼낸 말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눈을 의심했습니다. 국민의힘이나 정부에서 분명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려고 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바로, 근거도 뭐도 없이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몰아가고, 별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에도 계속 억지를 쓰는 모습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학생인권조례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고 통계나 연구결과 같은 것도 아랑곳않는데, 그런 게 바로 정부에서 싫어하는 괴담 아닙니까? 학생인권 괴담을 교육부와 대통령과 국민의힘, 극우 언론들이 퍼뜨리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입니다.
최근에 교육부나 국민의힘이 하는 말들이나 태도를 보면, 정말 문제가 뭔지를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이런 사건들을 마치 학생인권조례나 진보교육감을 공격할 건수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과연 입시 경쟁 때문, 억압적인 교육 제도 때문이라고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택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과연 교육부가 이렇게 나섰는지 묻고 싶습니다. 학생인권 침해 때문에 다치고 죽은 학생들의 사례에 대해선 즉각적으로 제도를 바꾸겠다고 나섰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렇게 정치적 공세에 사용하기 좋은 죽음에만 선택적으로 열 올리는 건 교육에서든 정치에서든 부끄러워해야 할 모습입니다.
대통령도 교육부 장관도 교사가 힘든 게 학생인권 보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이, 학교 수업에 적응하고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보호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게, 학교에서의 문제가 계속 사법절차를 밟게 되는 게 학생이 인간이라서, 학생을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우해서는 아닙니다. 학생인권조례 같은 제도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그런 문제들은 불거졌고, 학교도 교육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심해져온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는 이런 문제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다고도 생각합니다. 만약 학교가 15년, 20년 전처럼 체벌과 폭언이 일상이고, 강제이발이나 소지품 압수가 자주 벌어졌다면, 학생들은 학교에 더욱 많은 분노와 불만을 가졌을 테니깐요. 더욱 많은 분쟁과 갈등, 신고와 폭로가 이어졌을 게 뻔합니다.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제한 조치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문화, 불합리한 규율과 분위기 등을 조금이나마 완화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충돌도 줄어들고 교사들의 부담도 줄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부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한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가 힘들다고 말하는 건, 교사들이 하는 일이 학생의 인권을 짓밟는 일이라고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학생의 인권을 무시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오늘 이렇게 교사단체들이 나선 건 이런 주장이 교사들에게 모욕적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런 교사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알려지고 지지받아야 합니다. 헌법도, 아동권리협약도 모두 부정하는 이런 반민주주의적이고 위헌적인 주장을 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학생의 인권이 존중받으면서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인력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의무입니다. 정부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채, 학생인권 현실을 2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년 전 학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학교가 결코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좋은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지금 정부는, 교육당국은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좋은 학교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자회견문 전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동료와 더 많은 인권과 더 많은 민주주의다!"
학생과 학부모를 적으로 돌리고 교사를 각자도생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 거부한다
업무폭탄과 독박교실을 버텨온 모든 교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한 교사의 죽음 앞에 수많은 이들이 비통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은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제대로 된 애도를 하는 것도 어렵다. 교사들은 신뢰할 수 없는 교육정책과 제도, 정서적·사회적 격차나 학생 간 갈등 중재, 네이스 도입 이후 가중된 업무 시스템,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해진 업무들을 온전히 자신의 노동으로 메워 왔다. 엄청난 업무에 더해 교원평가와 성과급 도입으로 동료 간 공동체 의식은 파괴되고, 개별화되었다. 교육을 하는 학교라는 공간이, 일상을 동료-학교 구성원들과 차분히 나누고 성찰할 수 없는 공간이 된지 오래다. 이런 구조는 저경력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 또는 다른 직군의 교육노동자에게 기피 업무들이 떠넘기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 또한 이러한 비극의 공모자는 아닌지 자책하는 마음과 비통함이 뒤섞여 흔들리고 있다.
교육 주체 간 갈등에 대한 응징적 해법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 책임을 느껴야 할 정부는 근본 대책은 고사하고,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입맛대로 보수적-억압적 교육을 강화하려 한다. 먼저 타겟이 된 것은 학생인권조례다. 대통령실은 “학생인권조례를 국가붕괴시나리오의 일환”이라며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주문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한 학생 인권의 보장이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소중함을 아는 이가 다른 이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통령실의 지시가 있자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가 차별금지와 사생활침해 금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고시로 이를 보완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말하는 ‘교권’ 보장 방안이 학교에서의 차별과 사생활침해를 주문하겠다는 것인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없는 학교에서 교사의 생활지도가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존중될 리 만무하다. 윤석열 정권은 권리 주체인 교사와 학생이 더불어 성장하는 관계임을 부정하고, 위계를 강화하여 교육과 학교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또 대통령실은 국회에는 “아동학대처벌법과 교원지위법 등을 신속하게 논의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법률 개정안은, ‘정당한’ 생활지도의 범위에 대한 새로운 논란과 민원을 불러일으키고 교사들을 공격할 구실이 될 것이다. ‘교권침해행위 생기부 기록’ 역시 대학 입시 전쟁에 모든 것을 거는 상황에서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가 그랬듯 교사를 공격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책임을 감추고 협력해야 할 주체를 갈라치기하는 윤석열식 해법은 틀렸다.
경쟁 중심 자본주의와 이를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교육노동자도 양육자도 학생도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노동자의 현실과 한 번의 실수로 모든 미래의 가능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불안감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혐오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소수자성을 가진 학교 구성원에 대한 혐오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근본 문제를 묻어두고 해결은커녕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협력의 주체들을 갈라 세우고 구성원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방식으로의 ‘교권’ 대책은 학교를 되살리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교육 주체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각자도생으로 내모는 교육부와 대통령실이야말로 국가 붕괴 시나리오의 설계자다.
교사에게는 학생인권법과 도움을 청할 동료가 필요하다.
교육은 신뢰와 존중 속에서만 가능하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의 전제는 학생인권보장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학생인권법의 제정이 대안이다. 학생 인권이 더 폭넓게 보장되는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육노동자가 함께 성찰하고 숙고하고 서로를 돌보는 교육공동체의 토대일 것이다. 그래야만, 교사를 비롯한 학교 노동자에게 무분별한 요구가 쏟아질 때, 무한책임의 독박교실을 벗어나 자치시스템의 힘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장 시급하고 실현 가능한 대책은, 학급당 학생 수를 감축하고 충분한 교사 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교육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환경에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작 필요한 교사의 권리는 ‘노동-정치기본권’이다.
이러한 해결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사들이 ‘무기력’을 느끼는 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 또는 ‘바뀌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법, 정치, 제도로 교사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 시민으로서의 교사의 기본권마저 박탈해 왔다. 여러 해법과 대책이 우수수 쏟아지는 중에도 정말 교사들에게 필요한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에 대해서는 모두 함구하고 있는 현 상황은 생존권을 요구하는 교사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교육현장에 산적한 문제들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노동조건과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을 변화시킬 수단은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이다.
우리 교사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학생 인권 후퇴시키는 ‘교권’대책 폐기하고 학생인권법 제정하라!
1. 경쟁입시제도를 비롯한 경쟁과 차별 교육을 중단하고 실질적 학교 자치 보장하라!
1. 교원의 노동•정치 기본권과 교육과정 편성•운영권 보장하라!
1.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모든 교육노동자 정원 확대하라!
1. 학교 안 모든 교육노동자들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권 보장하라!
2023년 8월 8일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전국학생인권교사연대(준), 전교조 부천중등지회, 인권실천충남교사모임, 전교조 음성지회,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현장교사실천단, 교육공동체 벗, 충북교육연대
사진 :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오늘 오전 11시,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 거부 교사 단체 기자회견에 다녀왔습니다.
뙤약볕에서도 많은 분들이 현재 교육 제도와 정책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민주주의 실천을 요구하였습니다.
책임활동가 공현 님의 기자회견 발언문과 기자회견문 전문을 올립니다.
[기자회견 발언문]
서울 한 초등 교사의 죽음 이후, 채 사흘도 지나지 않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꺼낸 말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눈을 의심했습니다. 국민의힘이나 정부에서 분명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려고 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바로, 근거도 뭐도 없이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몰아가고, 별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에도 계속 억지를 쓰는 모습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학생인권조례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고 통계나 연구결과 같은 것도 아랑곳않는데, 그런 게 바로 정부에서 싫어하는 괴담 아닙니까? 학생인권 괴담을 교육부와 대통령과 국민의힘, 극우 언론들이 퍼뜨리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입니다.
최근에 교육부나 국민의힘이 하는 말들이나 태도를 보면, 정말 문제가 뭔지를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이런 사건들을 마치 학생인권조례나 진보교육감을 공격할 건수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과연 입시 경쟁 때문, 억압적인 교육 제도 때문이라고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택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과연 교육부가 이렇게 나섰는지 묻고 싶습니다. 학생인권 침해 때문에 다치고 죽은 학생들의 사례에 대해선 즉각적으로 제도를 바꾸겠다고 나섰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렇게 정치적 공세에 사용하기 좋은 죽음에만 선택적으로 열 올리는 건 교육에서든 정치에서든 부끄러워해야 할 모습입니다.
대통령도 교육부 장관도 교사가 힘든 게 학생인권 보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이, 학교 수업에 적응하고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보호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게, 학교에서의 문제가 계속 사법절차를 밟게 되는 게 학생이 인간이라서, 학생을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우해서는 아닙니다. 학생인권조례 같은 제도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그런 문제들은 불거졌고, 학교도 교육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심해져온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는 이런 문제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다고도 생각합니다. 만약 학교가 15년, 20년 전처럼 체벌과 폭언이 일상이고, 강제이발이나 소지품 압수가 자주 벌어졌다면, 학생들은 학교에 더욱 많은 분노와 불만을 가졌을 테니깐요. 더욱 많은 분쟁과 갈등, 신고와 폭로가 이어졌을 게 뻔합니다.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제한 조치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문화, 불합리한 규율과 분위기 등을 조금이나마 완화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충돌도 줄어들고 교사들의 부담도 줄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부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한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가 힘들다고 말하는 건, 교사들이 하는 일이 학생의 인권을 짓밟는 일이라고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학생의 인권을 무시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오늘 이렇게 교사단체들이 나선 건 이런 주장이 교사들에게 모욕적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런 교사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알려지고 지지받아야 합니다. 헌법도, 아동권리협약도 모두 부정하는 이런 반민주주의적이고 위헌적인 주장을 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학생의 인권이 존중받으면서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인력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의무입니다. 정부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채, 학생인권 현실을 2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년 전 학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학교가 결코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좋은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지금 정부는, 교육당국은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좋은 학교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자회견문 전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동료와 더 많은 인권과 더 많은 민주주의다!"
학생과 학부모를 적으로 돌리고 교사를 각자도생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 거부한다
업무폭탄과 독박교실을 버텨온 모든 교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한 교사의 죽음 앞에 수많은 이들이 비통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은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제대로 된 애도를 하는 것도 어렵다. 교사들은 신뢰할 수 없는 교육정책과 제도, 정서적·사회적 격차나 학생 간 갈등 중재, 네이스 도입 이후 가중된 업무 시스템,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해진 업무들을 온전히 자신의 노동으로 메워 왔다. 엄청난 업무에 더해 교원평가와 성과급 도입으로 동료 간 공동체 의식은 파괴되고, 개별화되었다. 교육을 하는 학교라는 공간이, 일상을 동료-학교 구성원들과 차분히 나누고 성찰할 수 없는 공간이 된지 오래다. 이런 구조는 저경력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 또는 다른 직군의 교육노동자에게 기피 업무들이 떠넘기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 또한 이러한 비극의 공모자는 아닌지 자책하는 마음과 비통함이 뒤섞여 흔들리고 있다.
교육 주체 간 갈등에 대한 응징적 해법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 책임을 느껴야 할 정부는 근본 대책은 고사하고,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입맛대로 보수적-억압적 교육을 강화하려 한다. 먼저 타겟이 된 것은 학생인권조례다. 대통령실은 “학생인권조례를 국가붕괴시나리오의 일환”이라며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주문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한 학생 인권의 보장이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소중함을 아는 이가 다른 이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통령실의 지시가 있자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가 차별금지와 사생활침해 금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고시로 이를 보완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말하는 ‘교권’ 보장 방안이 학교에서의 차별과 사생활침해를 주문하겠다는 것인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없는 학교에서 교사의 생활지도가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존중될 리 만무하다. 윤석열 정권은 권리 주체인 교사와 학생이 더불어 성장하는 관계임을 부정하고, 위계를 강화하여 교육과 학교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또 대통령실은 국회에는 “아동학대처벌법과 교원지위법 등을 신속하게 논의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법률 개정안은, ‘정당한’ 생활지도의 범위에 대한 새로운 논란과 민원을 불러일으키고 교사들을 공격할 구실이 될 것이다. ‘교권침해행위 생기부 기록’ 역시 대학 입시 전쟁에 모든 것을 거는 상황에서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가 그랬듯 교사를 공격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책임을 감추고 협력해야 할 주체를 갈라치기하는 윤석열식 해법은 틀렸다.
경쟁 중심 자본주의와 이를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교육노동자도 양육자도 학생도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노동자의 현실과 한 번의 실수로 모든 미래의 가능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불안감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혐오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소수자성을 가진 학교 구성원에 대한 혐오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근본 문제를 묻어두고 해결은커녕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협력의 주체들을 갈라 세우고 구성원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방식으로의 ‘교권’ 대책은 학교를 되살리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교육 주체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각자도생으로 내모는 교육부와 대통령실이야말로 국가 붕괴 시나리오의 설계자다.
교사에게는 학생인권법과 도움을 청할 동료가 필요하다.
교육은 신뢰와 존중 속에서만 가능하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의 전제는 학생인권보장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학생인권법의 제정이 대안이다. 학생 인권이 더 폭넓게 보장되는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육노동자가 함께 성찰하고 숙고하고 서로를 돌보는 교육공동체의 토대일 것이다. 그래야만, 교사를 비롯한 학교 노동자에게 무분별한 요구가 쏟아질 때, 무한책임의 독박교실을 벗어나 자치시스템의 힘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장 시급하고 실현 가능한 대책은, 학급당 학생 수를 감축하고 충분한 교사 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교육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환경에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작 필요한 교사의 권리는 ‘노동-정치기본권’이다.
이러한 해결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사들이 ‘무기력’을 느끼는 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 또는 ‘바뀌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법, 정치, 제도로 교사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 시민으로서의 교사의 기본권마저 박탈해 왔다. 여러 해법과 대책이 우수수 쏟아지는 중에도 정말 교사들에게 필요한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에 대해서는 모두 함구하고 있는 현 상황은 생존권을 요구하는 교사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교육현장에 산적한 문제들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노동조건과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을 변화시킬 수단은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이다.
우리 교사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학생 인권 후퇴시키는 ‘교권’대책 폐기하고 학생인권법 제정하라!
1. 경쟁입시제도를 비롯한 경쟁과 차별 교육을 중단하고 실질적 학교 자치 보장하라!
1. 교원의 노동•정치 기본권과 교육과정 편성•운영권 보장하라!
1.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모든 교육노동자 정원 확대하라!
1. 학교 안 모든 교육노동자들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권 보장하라!
2023년 8월 8일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전국학생인권교사연대(준), 전교조 부천중등지회, 인권실천충남교사모임, 전교조 음성지회,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현장교사실천단, 교육공동체 벗, 충북교육연대
사진 : 교육노동자현장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