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후기]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규탄하는 여성/페미니스트 기자회견에 참여했습니다.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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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 후퇴의 흐름에 맞서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11개의 여성단체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규탄하며 성명을 모았고, 오늘 (5월 17일)  오전 11시, 125개 단체, 1,082명의 여성·페미니스트 시민 연명을 서울시의회에 전달했습니다. 이어서 서울시의회 앞에서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를 존치하라!" 외치며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지음의 빈둥 활동가의 발언문과 기자회견문 전문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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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기간 : 5월 10일(금)~27일(월)
🎯 목표 : 2024년*22대국회=44,528명 이상
🎯 참여하기 : bit.ly/학생인권법서명 



[빈둥 활동가 발언문]

최근 충남과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었고, 광주, 경기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심지어 작년에는 전북에서 학생인권조례의 핵심 조항들을 축소시키는 교육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현 정권 들어서 학생인권 후퇴의 상황을 강력하게 직면하게 되어 분노스럽고, 한편으로는 여지껏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된 적이 없었음을 떠올리며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런 심정을 끌어모아 오늘 발언을 하고자 합니다.

학생인권조례(이하 ‘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 서울 등 6개 지역에서 제정되었습니다. 학생인권 과잉이라는 헛소리와 달리 조례는 제정된 지역보다 제정되지 않은 지역이 더 많고, 조례가 제정된 지역들에서도 학교장에 따라 학생인권 상황은 들쭉날쭉인데다 체벌, 두발복장 규제, 보충야간학습 강제 등 학생인권 침해의 문제들이 온전히 근절된 적이 없습니다. 조례가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 학교에서 따르지 않는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학생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학교와 교육 구조, 관계 등을 바꿔나가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제정되지 않은 지역보다 학생인권 상황이 조금 더 나을 뿐입니다. 조례가 제정된 지역의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거나 정치적 실천을 하면 해당 학생을 색출해 징계를 내렸습니다. 학교 성폭력/ 성차별의 문제를 고발한 학생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멸시와 조롱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시기에, 2018년 스쿨 미투 운동에서 그랬습니다. 학생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기에,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학생의 참여권, 발언권, 의결권 등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이기에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없어 스스로 말할 길을 만들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학생인권이 강조된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학생인권 관련 유구한 헛소리 중 "학생인권이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권리 보장의 문제는 이익 다툼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보수·혐오 단체, 정치인들은 이를 호도하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문제 상황의 원인을 교사와 학생 집단 간 문제로 몰아가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한 『2021년도 교권보호 및 교직상담 활동 지침서』에서도 학생으로 인한 교권침해 비중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다른 교직원이나 학부모로 인한 교권침해 비중이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교사가 학생의 인권 침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발표하며 교사의 노동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것처럼 굴었습니다.

정부는, 교육부는, 정치인들은 학생인권 후퇴를 용인하면서 이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면 20년 가까이 제정되지 못한 ‘학생인권법’부터 제정하십시오.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사회적 실천 강조를 법률로 구체화하십시오. 또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신이 겪는 상황을 바꿔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 나가십시오. 학생이 권위주의, 위계 질서에 대항할 때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국가 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여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 화장을 하는 학생, 성소수자 학생 등을 문제라 낙인찍지 않는, 다양한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드십시오. 그렇게 당신들이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책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할 때 이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 기자회견 구호 사진

- 기자회견 빈둥 발언 사진 *사진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기자회견문 전문]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규탄하는 여성/페미니스트 성명〉

학교 현장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백래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지난 4월 24일 충남도의회는 한번 부결된 폐지안을 즉시 재상정하는 억지 끝에 결국 충청남도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4월 26일에는 서울시의회가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의 날치기 상정과 의결을 통해 서울특별시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과도한 인권’, ‘조기 성애화’, ‘동성애 조장’과 같은 반인권적인 혐오 선동을 벌이는 세력의 갈채 속에 학교와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가치가 무너져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성별, 임신 또는 출산,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그리고 체벌과 성폭력을 비롯한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명시한다. 또한, 이러한 권리를 침해당한 경우의 실질적인 구제 방법이기도 하다. 이는 '학생다움'이라는 억압적인 틀 아래서 보편적 권리의 박탈이 정당화되어 온, 한국 사회 학생들이 놓인 특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학교 현장에는 구조적 차별의 문제가 겹겹이 얽혀 있으며, 특히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학생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학생에 대한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함은 ‘스쿨미투’ 운동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학교는 위계를 이용하고 훈육을 빙자하는 성폭력이 발생하고, 이를 공론화한 학생들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며 낙인찍는 현장이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이에 저항하여 더 안전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언어와 대응 수단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최소한의 장치조차 무력화하려는 백래시를 우리는 반드시 저지해낼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생 인권과 교사의 권리가 대립하는 양 호도하여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의 결과다. 교사의 노동권·인권이 침해 당하는 상황과 이로 인한 억울한 죽음을 해결할 책임은 학교와 교육 당국, 정부와 정치에 있다. 그러나 이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함으로써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를 반복해왔다. 힘과 책임이 있는 누구도 합당한 의무와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가장 취약한 지위에 놓인 소수자 학생의 권리와 삶을 희생시키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다른 학교 구성원의 지위를 떨어트리면 상대적으로 교사의 권리가 증진되어 보일 것이라 믿는 듯하다. 이런 눈속임은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고 안전한 학교 현장을 추구하는 교육 공동체 구성원과 시민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시민들은 이런 비열하고 무책임한 정치에 속지 않음을 분명히 전한다.

한편 학생인권조례의 연이은 폐지는 최근 몇 년 간 두드러진, 시민들이 나서서 이루어 낸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보를 퇴행시키려는 반동의 흐름 위에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전국의 성평등 추진 체계가 무력화되고 있다. 정부는 고용평등상담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등 차별·폭력과 인권 침해 예방을 위한 기관들의 2024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에 의해 공공도서관에서 성평등 도서가 ‘유해 도서’로 낙인 찍혀 검열 당하기도 했다. 정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저지함으로써 이러한 퇴행의 연쇄 작용을 끊어내야만 한다. 

여성/페미니스트 시민으로서 우리는 요구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인권적인 공격을 멈춰라. 서울시 교육감은 서둘러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라.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은 이번 폐지안 가결 과정의 반민주적 행태를 부끄러워하고, 멈추어야 한다. 학생인권법 제정을 공약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저지부터 총력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또한, 학생 인권이 지역 조례의 존폐에 따라 위협 당하는 가치일 수는 없다. 학생 인권의 보장을 위한 더 보편적이고 힘 있는 제도의 마련이 절실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 제정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는 학생 인권과 학교 현장의 보편적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책임을 다하라.

                               

2024년 5월 17일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규탄하는 125개 단체 및 1,082명의 여성· 페미니스트 일동



* 참고 : 어제 (5월 16일)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의회에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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