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여섯 번째 이야기] 님 초딩이세요?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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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초딩’이세요?] 

초딩, 중딩, 고딩... 각각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부르는 은어입니다. 주로 온라인에서 자주 사용되며 200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일종의 줄임말이자 신조어인데요, 신조어 중에서도 오래되었고 계속 쓰이다보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입니다. 대학생, 직장인을 대딩, 직딩으로 표현할 정도로 꽤 유명한 신조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딩’이 붙은 줄임말이라 해서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직딩(직장인), 대딩(대학생)은 말그대로 직장인인 사람, 대학생인 사람을 일컫는 말로 받아들여지지만 초딩, 중딩의 경우는 그저 ‘초등학생’, ‘중학생’이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특히 ‘초딩’은 쉽게 비하하거나 무시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는 ‘초딩’이라는 말을 주로 언제 사용할까요? 초등학생들이 본인을 직접 소개할 때 “저는 ‘초딩’입니다”라고 하지는 않죠. 주로 ‘초딩’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님, 초딩이세요?”, “너 초딩이지?” 이렇게 물을 때 사용되곤 합니다. 이 질문은 상대방이 정말 초등학생인지 아닌지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은 아니겠죠? 상대방이 예의가 없다고 느껴질 때, ‘무개념’하다고 생각할 때 상대방을 ‘초등학생/중학생 수준’이라고 칭하며 비꼬기 위해 쓰이는 말입니다. 
‘초딩’이라는 말은 주로 초등학생들을 배제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곤 합니다. 온라인 게임을 할 때는 대놓고 “초딩 사절”이라는 문장을 붙여놓는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고,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초등학생들을 만났을 때 “초딩/애들은 가라”라고 하거나 장난처럼 유치한 행동을 한 친구한테 “초딩이냐?”고 놀리듯 말하거나 “PC방에 ‘초딩’들 많아서 너무 싫다” 같은 말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같은 어린 사람들이 예의가 없고 개념 없는 행동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초딩’은 게임을 못하고 여러모로 실력이 부족해서 같이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 지적하고 배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이 사회에서 ‘초딩’이라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초딩’들이 개념 없는 행동을 하고, 예의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음에도 우리 사회는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초딩’이라고 부르고 무시합니다. 초등학생이 멸칭의 대상이 되는 셈입니다.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소위 ‘진상’인 사람들의 언행을 무심코 ‘어린 사람’이어서 그럴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결국 어린이 청소년을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됩니다. 또 이러한 고정관념이 강화될수록 ‘어린 사람’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도 더 서슴없이 쓰이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어린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기 때문에 어린이 청소년들은 온라인에서 실제 나이를 숨기거나 속이기도 합니다. 마치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걸 드러냈을 때 차별을 겪는 일이 잦아서 성별을 숨기는 것처럼요. 만약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하는 일이 없다면, 나이에 따라 사람을 대우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이가 무언가를 하고 말고 할 기준이 아니게 된다면, 나이를 숨기고 속이는 일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은 우리 안의 차별 의식과 차별에 익숙한 문화를 바꾸려 합니다. 또 어린이, 청소년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언어 표현을 돌아보면서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비하와 혐오를 담은 언어·문화에 함께 문제 제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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