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들을 짓는 사람+들] 정말로 학생이 교육의 주체라고 생각하고 있나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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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의 책임활동가인 공현 님이 <인권교육센터 들>의 소식지에 작성한 글입니다.




교권이란 말의 용례

‘교권 회복’, ‘교권 강화’……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어구이자, 요즘 교육부가 내놓는 정책들마다 붙은 수식어이기도 하다. 청소년운동 또는 교사운동 내부의 의견으로 ‘도대체 교권이 뭐냐’ 하며 따져 물은 게 내가 알기로만 20년은 넘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 ‘교권’이 무엇인지, 과연 적절한 개념인지는 여전히 논의되지 않은 채로 ‘교권’이란 말은 너무나 자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쓰이고 있다.

충분히 비판받지 않고 널리 쓰이는 개념이 흔히 그렇듯이 교권은 쉽사리 보수적인 관념으로 작동한다. 많은 사람에게 교권은 그저 막연히 ‘교사를 위한 것’으로 생각되거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도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 ‘교사의 말에 학생·학부모가 순응해야 한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교사가 학생에게 무언가를 못 하게 제한하는 일(체벌 금지라든지, 반성문 강요 금지라든지) 혹은 학생·보호자가 교사에게 문제 제기하는 일 자체가 교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생활지도 고시’ 등 교육부가 교권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을 보자. 민원 등의 처리를 교사 개인이 감당하지 않고 학교장 또는 학교 조직이 책임지게 하겠다는 (어쩌면 진작부터 당연히 했어야 했던) 것 말고는 대부분 ‘교사가 학생에게 이러이러한 걸 강제할 수 있다’라는 말들만 눈에 띈다. 교육부의 고시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 소지품도 학칙에 따라 이것저것 다 검사하고 압수할 수 있고, ‘과업 부과’라며 각종 벌도 내릴 수 있으며, 교사의 판단만으로도 교실 밖으로 ‘분리 조치’도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 원인이라며 학생인권조례 폐지·후퇴를 종용하는 교육부 장관의 노골적인 메시지는 또 어떠한가.

이렇게 접근하면 체벌 금지 조치 이후에도 학교 교육의 방식 및 교육환경을 개선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교육부의 잘못은 보이지 않게 되고 체벌 금지 자체가 문제였던 양 거론된다. 정원 감축이나 교직 사회 원자화, 교사운동에 대한 탄압 등으로 교사들의 노동 강도나 ‘독박 교실’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해 온 교육부의 책임은 가려진다. 오로지 교사가 학생·보호자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학생·보호자는 교사를 상대로 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만 강조된다.

교육부가 학생인권 탓을 하며 내놓는 대책과 메시지는, 단적으로 죽은 교사들을 학생들의 소지품을 압수하지 못해서, 떠드는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내지 못해서 자살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그 문제점과 무도함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지나치게 작아 보인다. 이런 불합리를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드는 포장지이자 연결고리가 바로 ‘교권’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권이란 것이 원래 그런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이든, 아니면 교육부가 교권 담론 중 가장 보수적이고 반인권적이고 구린 요소만을 부각시켜서 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이든 바로 지금 가장 힘을 얻고 있는 교권이란 말은 학생인권을 억압할 권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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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학생

학생인권의 후퇴가 우려되는 것과는 별개로, 최근 논의에서 내가 읽어 낸 또 다른 쟁점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학생을 교육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교권이 땅에 떨어져서 공교육이 붕괴했다는 말, 교권 회복을 통해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말은, 교사의 행위가 곧 교육으로 동일시됨을 보여 준다. 사실 ‘교권 추락’ 담론이 등장한 것 자체가 1990년대 이른바 ‘학교 붕괴’ 담론과 함께였으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 옛날부터 또 지금의 법제에서도 그 알맹이가 애매모호한 교권은 곧잘 ‘교육활동’과 동의어처럼 놓이곤 했다. 교사가 교육의 주체인 이런 교육관 속에서 학생은 교육의 대상, 교사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공부할 의무를 가진 존재이다. 교권 강화 대책이라며 나오는 것들이 죄 학생을 교사의 통제에 따르도록 하는 모양새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른바 교육 3주체론이든 정부의 교육 수요자/소비자론이든 학생이 교육의 주체라는 선언은 오래전부터 선포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교육에서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 인정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생은 학교 운영이나 교육 정책에도 유의미하게 참여할 수 없다. 선택권 등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도 결국 학생을 학교·교과 선택 및 만족도 조사 같은 제한적 영역에만 참여할 수 있는 소비자/수요자의 위치에 두는 것이다. 거시적인 교육 제도 결정에서부터 미시적인 교육활동에까지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서 참여하고 교육이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은 없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입발림이 학생들을 청소에 동원하는 용도로 쓰였듯이, “학생은 교육의 주체”라는 말 역시 학생들에게 교육 참여에 대한 책임감을 부과하거나 정부의 교원 인사 정책에 힘을 실으려고 할 때나 쓰인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교사에게 교육권을, 학생에게 학습권을”(by 전교조) 같은 현수막 문구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둘러싸고 교사에게는 ‘교육할 권리’라는 게 있고, 학생에게는 교사가 가르치는 대로 ‘학습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다. 본래 인권 체계에서 ‘교육권’(교육에 대한 권리, rights to education)은 학생을 비롯해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이지 ‘가르칠 권리’ 같은 게 아니다. 또한 교사의 ‘교육할 권리’라는 게 인권과 같은 차원에 놓일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여러모로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저 문구는 한국 사회의 교육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을 명료하게 표현하면서, 1차적으로는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혹은 교권과 학생인권)이 같은 차원에 있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인식을 재생산하며, 더 깊게는 교육의 주체는 곧 교사라는 교육관을 답습한다. 저런 문구를 대대적으로 내건 전교조 내지는 교사운동단체들이 이야기해 온 ‘교육 3주체’이나 ‘학생 중심 교육’이란 무엇이었을까, 학생도 교사와 마찬가지로 교육의 주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인 것일까 물음표를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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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라

학생이 교육의 주체라는 점은 학생 측의 동의나 의지가 없이는 교육이 성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로 더욱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교육이 불가능하고 학교가 붕괴한다면 그 가장 큰 이유는 (다수이든 소수이든) 학생들에게 학교 교육이 별로 의미 있는 것이 못 되기 때문, 혹은 교육 참여를 위한 의지나 여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호자 역시 학생보다는 그 직접성이 덜하지만 교육의 주체이며 교육을 어떻게 대하고 참여하는지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교권 회복’ 대책이란 교육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상황은 안중에도 없으며,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동의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강제하는 방식인 것 같다.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며, 공교육을 정상화(?)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문제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내는 걸로 당장 교사의 힘듦이 완화되는 듯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길게 봐서는 학생들의 학교 교육에 참여할 의지나 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성이 크다. 만일 이런 조치가 끝내 학교 자체에서 쫓겨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균열과 불안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학교가 불신과 각자도생의 장이 되고 교육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것은 작게는 교육 제도의 모순 탓이며, 넓게는 사회적 불평등과 공동체의 해체 등이 반영된 결과이다. 더군다나 특정 연령대의 모든 사람이 취학하고 1주일 수십 시간을 생활하는 학교의 특성상,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병적 현상이나 파탄을 교사를 비롯한 학교 노동자들은 더욱더 정면에서 체감하고 감당하게 된다. 이와 같은 거시적인 사회 현실과 학교·교육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교사-학생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고자 하는 법 제도는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문제를 잠시 가리거나 유보시킬 뿐이다.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논의하고 해결하는 한편으로, 당장의 학교의 노동자들이 고립되어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각종 차별과 폭력, 통제를 겪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 역시 더욱 신경써서 보호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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