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뚝딱 지음 38호] 빈둥의 둥망진창 둥리둥절 이야기 - 기대는 마음, 기대는 관계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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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빈둥의 둥망진창 둥리둥절 이야기 

- 기대는 마음, 기대는 관계


4월 6일에서 8일, 2박 3일 동안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제주도 삼달다방*에 모여 쉼 캠프를 가졌어요.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나날 속, 시간에 끌려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와중 혹하는 제안을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여유롭게 놀다가 돌아와서 일이 잔뜩 쌓이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마음 한켠에 두면서 말이죠. 

저는 하루라도 더 제주도에서 놀고 싶어서 공식 일정 하루 전 삼달다방에 도착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도란도란 모여 앉아 맛있는 파전과 막걸리를 먹으며 삼달다방이 생긴 과정을 듣기도 하고, 이번 쉼 캠프의 의미를 나누기도 했어요. 저는 이때다 싶어 강원도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을 모으기 위해 홍보도 했고요. 이번 쉼 캠프에서 느낀 아름다운 연대의 시작이었죠. (이 편지를 읽으시는 분들, 주변에 강원도민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세요. 👉서명 링크 : https://nuly.do/kd7h

쉼 캠프는 참여자들이 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었어요. 운전도, 밥도, 설거지도 하지 않아도 됐죠. 참여자는 동백동산과 유채꽃밭을 거닐고, 식당에서 차려진 밥을 노나 먹고, 카페에서 쉬는 시간을 잘 챙기면서 저녁이 되면 삼달다방으로 돌아와 밥을 잘 먹는 게 역할 같았어요. 덕분에 체력적으로 덜 지친 상태에서 다른 참여자들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밤에는 서로 근황을 얘기하면서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활동을 그만두게 된 결심과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나눴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로서의 공통된 정서를 확인하고, 이후에는 활동하면서 각자가 갖게 된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놓았어요.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장이 함께 연대해온 사람들에게조차 잘 전달되지 않는 상황, 폭력적인 경험을 하면서도 말하지 못 했던 이야기, 실수할까 어려워하고 긴장했던 시간을 꺼내보기도 했고, 다양한 상황과 삶을 의제로 함께 가져가지 못 했던 반성까지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는 깨달았어요. 그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의 운동적 가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관계로만 가득 찬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는 걸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쉼 캠프는 기대는 시간이고, 회복이었어요.
 
둘째 날에는 포도뮤지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라는 기획전을 관람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전시는 여러 시대의 디아스포라**와 다양한 소수자들이 소외되는 것에 공감하고 공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 제안합니다. 가시화되지 않아온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드러내고, 사회적 범주로 구분지어진 정체성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우리’의 의미를 확장하자고 말하면서요. 스스로 선택한 적은 없지만 ‘한국인’인 저는 글로만 접해온 디아스포라의 삶을 어떻게 함께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어요. 예전에 재일조선인에게 지역참정권조차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청소년 참정권 운동과 함께 연결고리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같은 민족이면서 기본권에 대한 국제연대라니 참 기묘하다고 느꼈습니다. 디아스포라가 청소년인권운동에서 해방적 요소를 찾을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면 정치적 연대의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말이죠. 그 실천을 위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에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밖에 귀결되지 않았지만, 경계를 넘고 없애는 일을 깊게 얘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날에는 참여자들이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에 가입하면서 장애인권운동과의 연대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함께 “장애인에게, 권리를! 차별은, 이제 그만! 동정은, 집어 치워! 혐오는, 쓰레기통에! 이윤보다, 생명을!”이라고 구호를 외쳤어요. 아름다운 연대의 마무리였죠. 이렇게 서로의 운동에 기꺼이 손을 건네고 함께 말하기가 가능했던 건 삼달다방이 환대의 공간이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을 환영하고 알아가주면서 쉬고 기대게 만들어주었으니까요. 쉼 캠프가 더 많은 지역의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을 초대하고 연간 행사로 진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삼달다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머무는 여행자 문화공간입니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거주하는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오늘날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떠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및 후손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빈둥의 둥망진창 둥리둥절 이야기’는 빈둥과 엉망진창, 어리둥절을 결합해서 짓게 된 이름이에요.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어리둥절 해온 시간, 그 속에서 켜켜이 담아온 여러 고민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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