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뚝딱 지음 39호] 공현의 투덜리즘 - '딱 맞는 대안' 말고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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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공현의 투덜리즘

- '딱 맞는 대안' 말고


어떤 악습이나 문제를 없애라고, 금지하라고 요구하면 이런 반응이 돌아오곤 하죠. “그럼 대안은 뭔데?” 예를 들면 학생인권 문제에서는 학교 체벌을 금지하라거나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라고 주장할 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활동가들은 대개 ‘비판하는 측에 대안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건 부당하고 과도하다, 비판의 정당성부터 따져야 한다’는 대꾸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에는 무언가를 대신하는 맞춤 대안을 찾는 생각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가령 학교 체벌의 대안이라고 거론되는 것들은 상벌점제, 성찰교실, 푸른교실 같은 다른 처벌 방식들(심지어는 ‘간접체벌’이라는 이상한 개념의 도입)이잖아요? 결국 체벌이 하던 기능을 대신해줄 또 다른 강제적 수단을 찾는 것입니다. 무언가 하나를 없애거나 바꾸어도 아무 문제 없이 기존의 방식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딱 맞는 대안’을 요구하는 밑에 깔려 있는 것 아닐까요? 그건 어떻게 보면 변화가 더 커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 총체적인 문제를 지엽적이고 국소적인 문제로 축소시키려는 것입니다.

세상 여러 문제들은 모두 서로 맞물려 연결되어 있습니다. 체벌은 교사 개인이 학생 수십 명을 통제할 것을 요구받는 조건, 체벌을 묵인하고 조장해 온 국가 정책, 비자발적인 교육 활동을 강요하는 상황 등이 배경에 있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의 일상화는 입시경쟁과 야간 사교육 성행, 지역 사회의 청소년 공간 부족, 장시간 노동 문제(“야근의 주간화”!) 등이 얽혀 있고요. 우리가 체벌을 없애라고 하는 것은 물론 체벌 자체가 옳지 않기 때문이지만, 나아가선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교육의 부조리들 역시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습니다. 그러니 체벌의 자리를 대신 채울 대안은 필요치 않습니다. 체벌이 없이도 운영될 수 있는 학교의 환경, 문화, 교육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하는 거지요. 기후 위기 시대, 석유 자동차를 대신할 전기 자동차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동차를 크게 줄이는 다른 도시 설계와 삶의 방식이 필요한 것처럼요.

최근에 저는 시민사회운동이 ‘구체적이고 작은 변화,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식의 조언을 곧잘 접했습니다. 우리가 운동을 계속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런 게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데만 주목하다 보면,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 운동에 부족한 것은 오히려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실 그건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고 나서면, 정부는 그 요구를 누르고 줄여서 정말 최소한의 작은 것 하나만 바꾸는 데 그칠 때가 왕왕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정말 우리 삶이 나아지게 하는 변화로는 이어지지 않게 됩니다. 새롭게 바뀐 그 하나의 요소가 주변의 기존 구조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삐거덕거리고 트러블이 생기기 일쑤입니다. 체벌 금지 정책이나 아동학대 관련 법도 그렇고, 최저임금 인상 정책도 그런 예겠지요. 사회를 바꾸는 데는 하나의 딱 맞는 대안 말고, 더욱더 많은 연쇄적인 변화와 총체적인 계획과 구상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여러 영역, 여러 경로를 통해 동시적이면서도 장기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를 대신해서 우리가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바로 ‘대안’일 수는 있겠네요.


🔸 '공현의 투덜리즘'은 예전에 공현이 함께 만들었던 〈오답 승리의 희망〉의 간판 코너명이었는데요. 오승희를 기리는 마음으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 사진 설명: 2011년 1월 19일 교육과학기술부의 체벌 금지 대안('학교문화 선진화 방안') 발표에 항의하는 행동 사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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