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공동성명] 아동양육시설에서 살던 한 청소년의 죽음을 추모하며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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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서] 아동양육시설에서 살던 한 청소년의 죽음을 추모하며


8월 26일, 또다시 우리 사회는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목격했다. 광주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거주하던 16세 청소년 A가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 글에는 “시설의 생활규칙 위반에 따른 벌칙 때문에 힘들다”는 고통이 적혀 있었다. 해당 시설은 오후 10시 이후 휴대전화와 컴퓨터 사용을 금지하는 규칙을 두고 있었고, A는 사망 전날 휴대전화 사용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칙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아동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규율과 통제를 앞세운 시설 문화가 만들어 낸 사회적 참사다. 많은 아동양육시설은 여전히 ‘보호’라는 미명 아래 아동을 억압한다. 그러나 아동은 보호의 대상이기 전에 하나의 존엄한 존재이며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UN아동권리협약은 모든 결정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제3조)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아동이 자신의 의견을 내고 존중받을 권리(제12조), 가정과 통신 등 사생활에 있어 간섭받지 않을 권리(제16조), 여가와 문화를 누릴 권리(제31조)를 명확하게 선언한다. 이 기본적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아동을 인간으로 존중할 최소한의 책임조차 방기하는 것이다. 

그 어떤 ‘협의된 규칙‘도 한 청소년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없다. 해당 시설은 아동과의 ‘협의’를 통해 자율적인 생활규칙을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A의 죽음은 시설 내에서 이루어지는 ‘협의’가 결코 아동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그 규칙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통제이자 억압의 수단으로 작동한 것이다.

문제는 단지 휴대폰 사용 규칙 그 자체가 아니다. 규칙이 어떻게 청소년에게 설명되고, 어떤 방식으로 협의되었으며, 실제로는 얼마나 강압적으로 적용되었는가가 핵심 문제다. 지금껏 시설 내에서 이루어진 엄격한 생활규칙들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해 왔으며, 이번 사건은 그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집단생활시설의 구조적 문제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떠한 절차와 내용이건 관리 대상에 대한 규칙은 통제와 강압의 형태로 귀결되기 쉽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와 경기도 인권위원회는 시설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생활규칙 개선을 거듭 권고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외면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다시금 한 청소년의 목숨을 잃었다. 이 죽음은 정부와 지자체가 시설 내 아동의 인권침해에 구조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명백히 드러낸다.

A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시설에 살아가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고통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시설에 갈 수밖에 없었던 많은 아동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존재와 죽음은 시설 아동 전체의 문제를 사회 앞에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A를 깊이 애도하며, 더 이상 반복되는 인권침해와 비극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강력히 요구한다.

좋은 시설이나 시설에 대한 엄격한 관리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설에서 아동을 돌보도록 일임하는 것은 현재의 동료 시민을 그리고 미래의 나를 사회에서 격리하고, 그 인권을 타인의 손에 맡기도록 허용하는 일이다. UN아동권리위원회도 지난 2019년 아동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대한민국에 권고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시설이 아닌 곳에서 대안 양육이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 휴대폰 사용 규제를 포함해, 문서로 실재하거나 암묵적인 생활규칙의 실태를 철저히 밝혀라. 

- 특히 정부와 지자체는 이번 사건을 특정 지자체의 문제로 한정하지 말고 전국의 아동양육시설에 대한 아동인권 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하라. 

- 조사를 통해 발견된 아동인권을 침해하는 규정과 벌칙 관행을 뿌리뽑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고,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 보호아동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 및 조치의 근거 규정도 도입하라. 그리고 이후 그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모니터링하여 확실한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 나아가 탈시설의 목표 아래 시설거주아동의 기본적 인권,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단계적 목표와 이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


2025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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