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성명] 입시폐지 운동과 학생인권 운동의 동지, 홍세화 씨를 추모하며
홍세화 씨가 2024년 4월 18일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서 활동하다가 1979년 프랑스로 망명했고, 2002년 귀국하여 진보적 지식인이자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홍세화 씨가 한국 사회에 남긴 발자취, 함께했던 운동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우리는 홍세화 씨를 경쟁교육을 비판하고 대학평준화, 학력·학벌 차별 없는 사회를 말하며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낸 분으로 기억합니다. 고인은 권위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학교의 문화, 대학서열화와 입시경쟁이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한국 사회에서 선도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2010~2011년에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에서 흔쾌히 청구인 대표를 맡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칼럼과 발언 등으로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홍세화 씨는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 경쟁과 차별이 없이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냈습니다.
입시폐지 운동과 학생인권 운동의 큰 동지이자 동료였던 홍세화 씨를 떠나 보내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 학생인권 보장, 학교민주화 등 우리가 같이 외쳤던 많은 것들이 아직도 현실이 되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고인의 글과 말뿐만 아니라, 일관되게 진보와 변혁을 위해 살아온 고인의 삶의 모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홍세화 씨의 삶과 이야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2024년 4월 19일
인권교육센터 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투명가방끈

[추모 성명] 입시폐지 운동과 학생인권 운동의 동지, 홍세화 씨를 추모하며
홍세화 씨가 2024년 4월 18일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서 활동하다가 1979년 프랑스로 망명했고, 2002년 귀국하여 진보적 지식인이자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홍세화 씨가 한국 사회에 남긴 발자취, 함께했던 운동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우리는 홍세화 씨를 경쟁교육을 비판하고 대학평준화, 학력·학벌 차별 없는 사회를 말하며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낸 분으로 기억합니다. 고인은 권위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학교의 문화, 대학서열화와 입시경쟁이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한국 사회에서 선도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2010~2011년에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에서 흔쾌히 청구인 대표를 맡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칼럼과 발언 등으로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홍세화 씨는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 경쟁과 차별이 없이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냈습니다.
입시폐지 운동과 학생인권 운동의 큰 동지이자 동료였던 홍세화 씨를 떠나 보내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 학생인권 보장, 학교민주화 등 우리가 같이 외쳤던 많은 것들이 아직도 현실이 되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고인의 글과 말뿐만 아니라, 일관되게 진보와 변혁을 위해 살아온 고인의 삶의 모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홍세화 씨의 삶과 이야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2024년 4월 19일
인권교육센터 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투명가방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