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기후정의행진을 맞이해 청소년인권 단체들이 함께 기후정의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함께 읽어 보아요.
그리고 바로 내일, 90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나요🤗
2024 청소년인권 기후정의선언문
청소년은 기후위기 때문에 무고하게 피해를 볼 안타까운 미래의 존재로 소비되곤 한다. '미래', '꿈나무' 등의 수식어와 함께 청소년은 '기후취약계층'으로 호명되고 또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된다.
학교 안의 청소년은 학교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교복제도는 태생부터 인권침해였지만, 이상기후가 계속 심화되는 현재에는 각자 다른 몸이 느끼는 더위와 추위를 무시하며 학생들에게 건강의 위협까지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교실에는 냉방과 난방을 제대로 제공하는 데 인색하며, 그 이유로 자원 절약을 말한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같은 양, 같은 메뉴를 배급하는 급식 또한, 컨디션이나 개인 사정, 채식/비건을 실천하는 등의 신념에 관계없이 잔반 없이 먹을 것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남긴 음식물쓰레기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죄책감을 심어주려 한다.
학교에서는 구조적 기후부정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에코'와 '그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그린워싱에 대해서만 배우며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고민은'대학입시전형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로 제한하고, 이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경쟁의 승자가 되는 데에 활용된다.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공교육제도는, 손쉽게 더욱 많은 자원을 소비할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사회가 말하는‘정당한 수단’을 거쳐 타인으로부터 빼앗아 쓸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교육받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교육의 내용을 발전시키기 위해 쓰여야 할 자원과 비용은 시험의 변별력과 공신력과 위상을 지키고 이 결과에 승복하게하기 위해서 지출된다.
사회는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존엄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으며, 패배했다는 사실을 개개의 책임과 잘못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자연물을 인간중심적 기준으로 가공해 소비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모습과 동일하다. 지구 전체가 인간을 위해 소비되는 자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청소년은 사회가 마음대로 가공해서 쓰다 버려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들은 승자독식의 세계관을 학습하며 원자화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인류 전체가 평등하게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 변화를 모색하는 대신 자원과 능력을 갖춘 승자가 되어 각자도생할 것을 종용당하고, 이를 위한 이윤추구와 경쟁은 또 다시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청소년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참고 견뎌야 하는 자리로 밀려난다. 청소년은 철이 없어서, 참을성이 없어서 자원을 낭비한다 치부하며 비청소년의 필요에 비해 더욱 엄격한 잣대로 타당성을 판단한다. 인내심을 기르고,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이 모든 것들에 교육의 이름을 붙이기까지 한다.
대중교통 이용, 쓰레기 분리수거 철저히 하기, 다회용품 쓰기 등 환경을 위한 실천은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리고 불편한 선택이다. 하지만, 쉴 틈 없이 학교/학원에서의 수업과 '능력계발'을 요구받는 대부분의 청소년에게 걸어서 이동할 시간, 일회용품에 담긴 즉석식품을 사 먹는 대신 집에서 밥을 먹고 뒤처리할 시간, 쓰레기를 올바르게 버릴 시간이 많을까? 또한, 청소년의 의식주는 철저히 학교나 양육자의 생활양식과 취향에 따라 결정되어, 청소년 자신의 의지로 기후정의를 위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이 거의 막혀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허락한 온건한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와 관심 이상으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순간,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위는 종종 배후를 의심받으며 폄하 당한다. 애초에 청소년이 기후위기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자리와 범위를 어른들이 허락하는 테두리 안으로 제한당하며, 이마저도 제대로 주어지지 못하고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에는 청소년의 목소리가 끼어들 틈조차 없다.
청소년은 이 기후위기 시대에서 오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선진국, 기업 등 특권층이‘기후위기는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을 규탄하고 책임을 요구하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는 하나의 주체이다. 청소년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기후위기를 포함한 현대 사회 문제의 당사자이다. 기후위기는 미래의 일이 아니기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라는 말은 필요치 않다. 청소년도 비(非)청소년도 이미 재난의 한가운데에 있다.
우리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청소년의 생활시간 통제권과 생활양식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소비의 방식은 조금 느리게 사는 것이 가능한 삶의 조건 속에서, 누군가에게 구애받지 않는 삶의 양식에 대한 선택권 보장 속에서 가능하다.
청소년의 학습 시간을 줄여라. 등교 시간과 하교 시간을 조정하고, 의무수업일수와 커리큘럼을 단축하는 등, 국가적, 제도적 차원에서 학습시간을 줄이려는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 학교나 학원 등 집단생활 건물 사용에 드는 석탄연료, 전기 사용량 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건물을 사용하는 시간에 자원사용을 인색하게 해서 절약할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학습 시간 자체를 획기적으로 단축해야 한다. 인간을 소모재 취급하는 교육, 자원을 더 많이 쓰고 기후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경쟁하는 교육은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한 공동체 안에서 시민이 된다는 것은 동등한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존중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후정의 또한 어른들이 대신 결정해주는 것, 더 공부하고 나중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직접 실현 할 수 있어야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자원을 분배하던 불평등한 기준, 이윤과 경제적 가치를 중점에 둔 학교와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꿔내야 누구도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특히나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지금의 체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외침 속에서 ‘청소년을 더 이상 미래에 머물러있게 하지 마라’는 선언은 우리가 기존에 반복하던 위기의 재생산을 멈추는 일일지도 모른다. 청소년 참여 없이 기후정의는 없다. 오늘 907기후정의행진에 모인 우리는 지금 우리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기후위기의 문제들을 기후정의로 대안을 찾는 시민의 몫으로 함께 행진하며 외칠 것이다.
🔸‘미래세대를 위하여’가 아닌 지금 우리를 위하여 행동하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내자!
🔸청소년의 생활시간 보장과 생활양식의 자유로 기후정의 실현하자!
🔸청소년을 이윤/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여기는 입시경쟁교육을 멈춰라!
🔸기후위기 시대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더욱더 확대되어야한다!
2024. 9. 7.
고양학생자치연구소 가론 / 교육공동체 나다 / 대구청소년인권단체 얼라들 / 전국청소년정치연석회의 /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마그마 /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 /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2024 기후정의행진을 맞이해 청소년인권 단체들이 함께 기후정의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함께 읽어 보아요.
그리고 바로 내일, 90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나요🤗
2024 청소년인권 기후정의선언문
청소년은 기후위기 때문에 무고하게 피해를 볼 안타까운 미래의 존재로 소비되곤 한다. '미래', '꿈나무' 등의 수식어와 함께 청소년은 '기후취약계층'으로 호명되고 또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된다.
학교 안의 청소년은 학교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교복제도는 태생부터 인권침해였지만, 이상기후가 계속 심화되는 현재에는 각자 다른 몸이 느끼는 더위와 추위를 무시하며 학생들에게 건강의 위협까지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교실에는 냉방과 난방을 제대로 제공하는 데 인색하며, 그 이유로 자원 절약을 말한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같은 양, 같은 메뉴를 배급하는 급식 또한, 컨디션이나 개인 사정, 채식/비건을 실천하는 등의 신념에 관계없이 잔반 없이 먹을 것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남긴 음식물쓰레기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죄책감을 심어주려 한다.
학교에서는 구조적 기후부정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에코'와 '그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그린워싱에 대해서만 배우며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고민은'대학입시전형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로 제한하고, 이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경쟁의 승자가 되는 데에 활용된다.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공교육제도는, 손쉽게 더욱 많은 자원을 소비할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사회가 말하는‘정당한 수단’을 거쳐 타인으로부터 빼앗아 쓸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교육받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교육의 내용을 발전시키기 위해 쓰여야 할 자원과 비용은 시험의 변별력과 공신력과 위상을 지키고 이 결과에 승복하게하기 위해서 지출된다.
사회는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존엄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으며, 패배했다는 사실을 개개의 책임과 잘못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자연물을 인간중심적 기준으로 가공해 소비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모습과 동일하다. 지구 전체가 인간을 위해 소비되는 자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청소년은 사회가 마음대로 가공해서 쓰다 버려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들은 승자독식의 세계관을 학습하며 원자화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인류 전체가 평등하게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 변화를 모색하는 대신 자원과 능력을 갖춘 승자가 되어 각자도생할 것을 종용당하고, 이를 위한 이윤추구와 경쟁은 또 다시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청소년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참고 견뎌야 하는 자리로 밀려난다. 청소년은 철이 없어서, 참을성이 없어서 자원을 낭비한다 치부하며 비청소년의 필요에 비해 더욱 엄격한 잣대로 타당성을 판단한다. 인내심을 기르고,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이 모든 것들에 교육의 이름을 붙이기까지 한다.
대중교통 이용, 쓰레기 분리수거 철저히 하기, 다회용품 쓰기 등 환경을 위한 실천은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리고 불편한 선택이다. 하지만, 쉴 틈 없이 학교/학원에서의 수업과 '능력계발'을 요구받는 대부분의 청소년에게 걸어서 이동할 시간, 일회용품에 담긴 즉석식품을 사 먹는 대신 집에서 밥을 먹고 뒤처리할 시간, 쓰레기를 올바르게 버릴 시간이 많을까? 또한, 청소년의 의식주는 철저히 학교나 양육자의 생활양식과 취향에 따라 결정되어, 청소년 자신의 의지로 기후정의를 위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이 거의 막혀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허락한 온건한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와 관심 이상으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순간,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위는 종종 배후를 의심받으며 폄하 당한다. 애초에 청소년이 기후위기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자리와 범위를 어른들이 허락하는 테두리 안으로 제한당하며, 이마저도 제대로 주어지지 못하고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에는 청소년의 목소리가 끼어들 틈조차 없다.
청소년은 이 기후위기 시대에서 오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선진국, 기업 등 특권층이‘기후위기는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을 규탄하고 책임을 요구하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는 하나의 주체이다. 청소년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기후위기를 포함한 현대 사회 문제의 당사자이다. 기후위기는 미래의 일이 아니기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라는 말은 필요치 않다. 청소년도 비(非)청소년도 이미 재난의 한가운데에 있다.
우리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청소년의 생활시간 통제권과 생활양식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소비의 방식은 조금 느리게 사는 것이 가능한 삶의 조건 속에서, 누군가에게 구애받지 않는 삶의 양식에 대한 선택권 보장 속에서 가능하다.
청소년의 학습 시간을 줄여라. 등교 시간과 하교 시간을 조정하고, 의무수업일수와 커리큘럼을 단축하는 등, 국가적, 제도적 차원에서 학습시간을 줄이려는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 학교나 학원 등 집단생활 건물 사용에 드는 석탄연료, 전기 사용량 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건물을 사용하는 시간에 자원사용을 인색하게 해서 절약할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학습 시간 자체를 획기적으로 단축해야 한다. 인간을 소모재 취급하는 교육, 자원을 더 많이 쓰고 기후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경쟁하는 교육은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한 공동체 안에서 시민이 된다는 것은 동등한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존중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후정의 또한 어른들이 대신 결정해주는 것, 더 공부하고 나중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직접 실현 할 수 있어야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자원을 분배하던 불평등한 기준, 이윤과 경제적 가치를 중점에 둔 학교와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꿔내야 누구도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특히나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지금의 체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외침 속에서 ‘청소년을 더 이상 미래에 머물러있게 하지 마라’는 선언은 우리가 기존에 반복하던 위기의 재생산을 멈추는 일일지도 모른다. 청소년 참여 없이 기후정의는 없다. 오늘 907기후정의행진에 모인 우리는 지금 우리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기후위기의 문제들을 기후정의로 대안을 찾는 시민의 몫으로 함께 행진하며 외칠 것이다.
🔸‘미래세대를 위하여’가 아닌 지금 우리를 위하여 행동하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내자!
🔸청소년의 생활시간 보장과 생활양식의 자유로 기후정의 실현하자!
🔸청소년을 이윤/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여기는 입시경쟁교육을 멈춰라!
🔸기후위기 시대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더욱더 확대되어야한다!
2024. 9. 7.
고양학생자치연구소 가론 / 교육공동체 나다 / 대구청소년인권단체 얼라들 / 전국청소년정치연석회의 /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마그마 /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 /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