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저도 체벌 생존자인 것 같아요"
〈2024 학교 체벌 생존자 위로회〉를 준비하며 지음 곁의 사람들을 만나는 인터뷰! 이번에는 지음의 후원자이자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에서 활동하는 윤경 님을 만났어요. 윤경 님은 청소년인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계신데요.
"중요한 건 학생인권 옹호자로서 학부모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를 늘 고민하며 바쁘게 활동하는 윤경 님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아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윤경 님 안녕하세요, 저는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이하 '참학')' 회장 이윤경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은 2017년부터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윤경 님 참학이 올해가 (활동 시작한 지) 35년인데요. 예전에 저는 사무처에 있었고, 그때부터 학생인권이나 청소년 참정권 관련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저는 학생인권에 방점을 찍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학부모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 활동 중에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에 우선순위를 두는 거죠. 또 세월호 진상 규명, 세월호 참사 기억하기, 유보통합이나 돌봄이나 이런 교육 현안들에 대응하고 목소리 내는 활동, 경쟁 교육 철폐 이런 주제로 함께하고요. 주로 학교 다니면서 강의를 하는데 강의는 두 종류예요. 학부모의 학교 참여 활동, 또 하나는 학교폭력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다니고 있어요.
저희가 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서로 활동 이야기는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참학'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윤경 님의 활동 이야기가 궁금해요.
윤경 님 참학이라는 단체를 알고는 있었는데, 제가 2011년부터 한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상근활동가를 하고 있어서 학부모회 활동까지 하기는 조금 버거웠어요. 근데 자녀가 다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부모로서의 학교에 대한 불만들은 계속 갖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첫째 자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 학교가 혁신학교여서 제가 학부모 임원을 손 들어서 하기 시작한거죠. 그게 2016년이었어요. 그때 서울시교육청에서 학부모회 조례('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설치ㆍ운영 및 학부모교육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시작되는 해였어요. 그 내용을 보고 학교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혼자 싸웠죠. 왜냐면 여전히 학교에서 학부모회가 돈을 걷고, 임원하려면 1학년에서 얼마 걷어와, 2학년에서 얼마 걷어와 이런 식으로 했었거든요. 근데 조례를 보면 돈을 그렇게 걷으면 안 된다고 나와 있어요. 기존 임원들은 그 조례가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싸움을 혼자서 외롭게 계속하다가 ‘아, 학부모회를 같이 해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2017년에 (참학) 상근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렇게 상근활동가부터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본부라고 해서 굉장히 규모가 클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3명이 딱 근무하고 계셔가지고 굉장히 놀랐죠.
참학의 역사는 상근활동가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알게 됐어요. 전교조가 1989년에 세워졌는데 참학도 1989년에 세워졌거든요. 당시 중·고등학생운동도 굉장히 활발했었고, 학부모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굉장히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단 말이에요. '참교육'이라는 용어는 낯설지 않았는데, 참학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는 잘 몰랐어요. 육성회비를 없애고, 촌지 근절 운동을 하면서 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무상급식 운동이라든지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다는 건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죠. 아, 그리고 상담실이 따로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어요. 상담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첫째 자녀가 초등학생 때 3년 동안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었는데, 아마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몰라서, 힘든 걸 당하면서도 그냥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되게 미안하기도 해요. 약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너무 돌아왔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상담실 활동이 있었던 덕분에, 예전에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억도 있어요. (과거 청소년인권운동에서는 〈학생인권상담소 '넘어'〉를 참학과 함께 운영한 경험이 있다.)
윤경 님 (상담실 활동에 대해) 활동가들이 맡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고 자원 활동으로 이뤄지기도 하다 보니, 지금은 없어졌는데 사실 많이 아쉬워요. 제가 상담실장을 했을 때도 청소년인권단체들이랑 같이 하고 싶은, 연계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제가 올해로 (참학) 회장 임기가 끝인데, 임기 이후에도 계속 가져가고 싶은 활동은 이 상담 부분이에요. 학부모들이 상담하는 대부분은 학생에 관련된 게 많아요. 근데 지금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지면 이런 권리 구제 창구가 아예 없어지는 거거든요. 이건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 일이고. 만약 학부모 상담소라도 운영을 하면 학생의 권리를 침해당하는 문제도 많이 접수될 거예요. 이걸 법으로 해서 공공 차원에서, 세금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하나도 안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더 (상담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2022년부터는 '지으미'로 정기 후원을 하고 계신데요. 지음을 후원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윤경 님 사실 초창기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으면 더 일찍 가입했을 거예요. 저도, 학부모도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몰랐었어요. 가입해달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래서 2022년에 가입을 하게 됐어요. (웃음) 저는 사실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분들의 언어에서 굉장히 많은 걸 배워요. 그래서 ‘지음’ 하면 딱 생각나는 게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 주는 힘과 충격이 있잖아요. 제가 강의를 다닐 때마다 이 얘기를 꼭 해요. 그리고 소식지 〈뚝딱지음〉을 사실 다 보진 못해요. 그래도 한번씩 봤을 때 저한테 계속 그렇게 깨어 있게 하는 신선한 문장들이 많이 담겨 있어요.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또 지금 학부모 신문에 연재도 계속해 주고 계시잖아요. 칼럼 연재해 주셔서 학부모 신문이 빛이 나고, 풍성해지고 있어요. 보면 굉장히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서 주시는 게 보이거든요. 글마다 활동가분들이 보내주시는 게 너무 소중하고 그래서 참 보물 같은 분들을 만났구나 싶어요.
지음에서 작년부터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 하면서 양육자 간담회 때도 참여하셨는데요, 함께하면서 느꼈던 소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윤경 님 처음에는 『체벌 거부 선언』 책으로 고민을 시작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래, 나도 체벌이 너무 싫었지'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에서는 굉장히 명료하게 명찰을 달아준 것 같은 느낌이었던 거예요. 체벌이 국가가 공식적으로 자행하고 용인하는 폭력이었네, 정확하게 짚어줬다고 생각해요. 작년 간담회에서 옛날에 내가 직접 경험했던 거, 또 양육자로서 경험했던 거, 이런 경험들을 나눴던 거잖아요. 근데 참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왜냐면 저랑 자녀랑 30년 차이가 나는데 30년이 지나도 여전한 거예요. 지금까지 뭐했지, 싶은 거죠. 직접적으로 신체를, 손바닥을 때리거나 이런 것들은 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심적으로 느끼는 그 체벌은 여전히 있고, 어쩌면 더 교묘해지고.
저도 사실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었던 게 단체 기합이었거든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어요.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당연히 있었고, 성경 시간이 따로 있었고, 그걸 시험을 봐서 내신에도 들어가고요.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채플 시간이 있었고, 학급에서는 매일 출석번호 순으로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어야 했어요. 저는 기도를 하기 싫어서 기타 반주를 자청했어요. 반주를 하면 기도를 안 해도 되니까 차라리 성가 부를 때 반주를 하겠다고 한 거죠. 근데 그 매주 하는 채플 시간에 선생님들이 졸고 있는 학생들 이름을 수첩에다가 적어요. 그리고 끝나면 이제 딱딱딱 누구누구 잡아내는 거예요. 그 학생들을 데리고 체육실로 가요. 체육실로 가서 엎드려뻗쳐 시켜서 대걸레로 다 때려요. 그렇게 맞았어요. 그런 것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거예요.
더 큰 문제는 아까 제가 30년 차인데 그게 안 바뀌었다고 얘기했잖아요. 제 첫째 자녀가 제가 나온 중학교의 30년 후배거든요. 근데 그 학교가 사립이에요. 선생님이 안 바뀌고 30년을 그 학교에 계셨던 분이 있는 거예요. 저 다닐 때 몽둥이를 들고 다닌 게 그 선생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저희 자녀가 다닐 때도 그분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또 그 학교 학부모회에서 선생님한테 회초리를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선물했어요. 근데 제가 그때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런 학부모회가 너무 싫어서요. 지금 생각하니 비겁했던 것 같아요. 저도 자녀도 체벌의 생존자가 맞는 것 같아요. 다른 학부모와 자녀들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지음의 활동에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윤경 님 후원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는 게 가장 큰 힘이 되겠죠. 실은 제가 후원하고 있는 곳들 중에 벌써 두 군데가 해산 총회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저 버티는 게 가장 큰 과제가 된 것 같아요. 근데 또 버티려면 물질적인 것도 있겠지만, 같이 이렇게 마주하면서 어깨동무하는 이 연대의 힘들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같이 버팁시다. 같이 버팁시다라는 말밖에 못하는 마음이 좀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요.
〈학교 체벌 생존자 위로회〉에 '변화의 월담'에서 같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월담이 담을 넘는다는 뜻이기도 한 거잖아요. 그게 굉장히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우리는 늘 자기 높이만큼만 보게 되고 그 바깥을 잘 모르잖아요. 담을 넘는다는 게 그냥 막 시도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럴 때 누군가가 밖에서 딱 손만 내밀어줘도 월담을 할 수 있는 거죠. 아니면 안에서 누군가 요만큼이라도 좀 받쳐주면, 그거에 기대서 또 뛰어넘을 수도 있고. 그래서 안과 밖에서 그런 손길이 필요하겠다, 이 위로회가 그런 '작은 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위로회 후원하러 가기 https://forms.gle/yDQhCnBnbP98rU6d9
👉 위로회 참가 신청하러 가기 https://forms.gle/SLC1Xvz5VSjUFEPJA
👉 위로회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https://yhrjieum.kr/20240505
✅ [첫 번째 인터뷰 읽기]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진심인 응원은 기부” 체벌에 대한 공적 논의를 바라는 지지자 지우 님을 만나다
"생각해보니 저도 체벌 생존자인 것 같아요"
〈2024 학교 체벌 생존자 위로회〉를 준비하며 지음 곁의 사람들을 만나는 인터뷰! 이번에는 지음의 후원자이자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에서 활동하는 윤경 님을 만났어요. 윤경 님은 청소년인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계신데요.
"중요한 건 학생인권 옹호자로서 학부모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를 늘 고민하며 바쁘게 활동하는 윤경 님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아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윤경 님 안녕하세요, 저는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이하 '참학')' 회장 이윤경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은 2017년부터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윤경 님 참학이 올해가 (활동 시작한 지) 35년인데요. 예전에 저는 사무처에 있었고, 그때부터 학생인권이나 청소년 참정권 관련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저는 학생인권에 방점을 찍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학부모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 활동 중에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에 우선순위를 두는 거죠. 또 세월호 진상 규명, 세월호 참사 기억하기, 유보통합이나 돌봄이나 이런 교육 현안들에 대응하고 목소리 내는 활동, 경쟁 교육 철폐 이런 주제로 함께하고요. 주로 학교 다니면서 강의를 하는데 강의는 두 종류예요. 학부모의 학교 참여 활동, 또 하나는 학교폭력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다니고 있어요.
저희가 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서로 활동 이야기는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참학'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윤경 님의 활동 이야기가 궁금해요.
윤경 님 참학이라는 단체를 알고는 있었는데, 제가 2011년부터 한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상근활동가를 하고 있어서 학부모회 활동까지 하기는 조금 버거웠어요. 근데 자녀가 다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부모로서의 학교에 대한 불만들은 계속 갖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첫째 자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 학교가 혁신학교여서 제가 학부모 임원을 손 들어서 하기 시작한거죠. 그게 2016년이었어요. 그때 서울시교육청에서 학부모회 조례('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설치ㆍ운영 및 학부모교육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시작되는 해였어요. 그 내용을 보고 학교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혼자 싸웠죠. 왜냐면 여전히 학교에서 학부모회가 돈을 걷고, 임원하려면 1학년에서 얼마 걷어와, 2학년에서 얼마 걷어와 이런 식으로 했었거든요. 근데 조례를 보면 돈을 그렇게 걷으면 안 된다고 나와 있어요. 기존 임원들은 그 조례가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싸움을 혼자서 외롭게 계속하다가 ‘아, 학부모회를 같이 해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2017년에 (참학) 상근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렇게 상근활동가부터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본부라고 해서 굉장히 규모가 클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3명이 딱 근무하고 계셔가지고 굉장히 놀랐죠.
참학의 역사는 상근활동가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알게 됐어요. 전교조가 1989년에 세워졌는데 참학도 1989년에 세워졌거든요. 당시 중·고등학생운동도 굉장히 활발했었고, 학부모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굉장히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단 말이에요. '참교육'이라는 용어는 낯설지 않았는데, 참학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는 잘 몰랐어요. 육성회비를 없애고, 촌지 근절 운동을 하면서 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무상급식 운동이라든지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다는 건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죠. 아, 그리고 상담실이 따로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어요. 상담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첫째 자녀가 초등학생 때 3년 동안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었는데, 아마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몰라서, 힘든 걸 당하면서도 그냥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되게 미안하기도 해요. 약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너무 돌아왔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상담실 활동이 있었던 덕분에, 예전에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억도 있어요. (과거 청소년인권운동에서는 〈학생인권상담소 '넘어'〉를 참학과 함께 운영한 경험이 있다.)
윤경 님 (상담실 활동에 대해) 활동가들이 맡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고 자원 활동으로 이뤄지기도 하다 보니, 지금은 없어졌는데 사실 많이 아쉬워요. 제가 상담실장을 했을 때도 청소년인권단체들이랑 같이 하고 싶은, 연계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제가 올해로 (참학) 회장 임기가 끝인데, 임기 이후에도 계속 가져가고 싶은 활동은 이 상담 부분이에요. 학부모들이 상담하는 대부분은 학생에 관련된 게 많아요. 근데 지금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지면 이런 권리 구제 창구가 아예 없어지는 거거든요. 이건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 일이고. 만약 학부모 상담소라도 운영을 하면 학생의 권리를 침해당하는 문제도 많이 접수될 거예요. 이걸 법으로 해서 공공 차원에서, 세금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하나도 안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더 (상담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2022년부터는 '지으미'로 정기 후원을 하고 계신데요. 지음을 후원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윤경 님 사실 초창기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으면 더 일찍 가입했을 거예요. 저도, 학부모도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몰랐었어요. 가입해달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래서 2022년에 가입을 하게 됐어요. (웃음) 저는 사실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분들의 언어에서 굉장히 많은 걸 배워요. 그래서 ‘지음’ 하면 딱 생각나는 게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 주는 힘과 충격이 있잖아요. 제가 강의를 다닐 때마다 이 얘기를 꼭 해요. 그리고 소식지 〈뚝딱지음〉을 사실 다 보진 못해요. 그래도 한번씩 봤을 때 저한테 계속 그렇게 깨어 있게 하는 신선한 문장들이 많이 담겨 있어요.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또 지금 학부모 신문에 연재도 계속해 주고 계시잖아요. 칼럼 연재해 주셔서 학부모 신문이 빛이 나고, 풍성해지고 있어요. 보면 굉장히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서 주시는 게 보이거든요. 글마다 활동가분들이 보내주시는 게 너무 소중하고 그래서 참 보물 같은 분들을 만났구나 싶어요.
지음에서 작년부터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 하면서 양육자 간담회 때도 참여하셨는데요, 함께하면서 느꼈던 소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윤경 님 처음에는 『체벌 거부 선언』 책으로 고민을 시작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래, 나도 체벌이 너무 싫었지'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에서는 굉장히 명료하게 명찰을 달아준 것 같은 느낌이었던 거예요. 체벌이 국가가 공식적으로 자행하고 용인하는 폭력이었네, 정확하게 짚어줬다고 생각해요. 작년 간담회에서 옛날에 내가 직접 경험했던 거, 또 양육자로서 경험했던 거, 이런 경험들을 나눴던 거잖아요. 근데 참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왜냐면 저랑 자녀랑 30년 차이가 나는데 30년이 지나도 여전한 거예요. 지금까지 뭐했지, 싶은 거죠. 직접적으로 신체를, 손바닥을 때리거나 이런 것들은 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심적으로 느끼는 그 체벌은 여전히 있고, 어쩌면 더 교묘해지고.
저도 사실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었던 게 단체 기합이었거든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어요.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당연히 있었고, 성경 시간이 따로 있었고, 그걸 시험을 봐서 내신에도 들어가고요.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채플 시간이 있었고, 학급에서는 매일 출석번호 순으로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어야 했어요. 저는 기도를 하기 싫어서 기타 반주를 자청했어요. 반주를 하면 기도를 안 해도 되니까 차라리 성가 부를 때 반주를 하겠다고 한 거죠. 근데 그 매주 하는 채플 시간에 선생님들이 졸고 있는 학생들 이름을 수첩에다가 적어요. 그리고 끝나면 이제 딱딱딱 누구누구 잡아내는 거예요. 그 학생들을 데리고 체육실로 가요. 체육실로 가서 엎드려뻗쳐 시켜서 대걸레로 다 때려요. 그렇게 맞았어요. 그런 것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거예요.
더 큰 문제는 아까 제가 30년 차인데 그게 안 바뀌었다고 얘기했잖아요. 제 첫째 자녀가 제가 나온 중학교의 30년 후배거든요. 근데 그 학교가 사립이에요. 선생님이 안 바뀌고 30년을 그 학교에 계셨던 분이 있는 거예요. 저 다닐 때 몽둥이를 들고 다닌 게 그 선생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저희 자녀가 다닐 때도 그분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또 그 학교 학부모회에서 선생님한테 회초리를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선물했어요. 근데 제가 그때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런 학부모회가 너무 싫어서요. 지금 생각하니 비겁했던 것 같아요. 저도 자녀도 체벌의 생존자가 맞는 것 같아요. 다른 학부모와 자녀들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지음의 활동에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윤경 님 후원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는 게 가장 큰 힘이 되겠죠. 실은 제가 후원하고 있는 곳들 중에 벌써 두 군데가 해산 총회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저 버티는 게 가장 큰 과제가 된 것 같아요. 근데 또 버티려면 물질적인 것도 있겠지만, 같이 이렇게 마주하면서 어깨동무하는 이 연대의 힘들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같이 버팁시다. 같이 버팁시다라는 말밖에 못하는 마음이 좀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요.
〈학교 체벌 생존자 위로회〉에 '변화의 월담'에서 같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월담이 담을 넘는다는 뜻이기도 한 거잖아요. 그게 굉장히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우리는 늘 자기 높이만큼만 보게 되고 그 바깥을 잘 모르잖아요. 담을 넘는다는 게 그냥 막 시도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럴 때 누군가가 밖에서 딱 손만 내밀어줘도 월담을 할 수 있는 거죠. 아니면 안에서 누군가 요만큼이라도 좀 받쳐주면, 그거에 기대서 또 뛰어넘을 수도 있고. 그래서 안과 밖에서 그런 손길이 필요하겠다, 이 위로회가 그런 '작은 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위로회 후원하러 가기 https://forms.gle/yDQhCnBnbP98rU6d9
👉 위로회 참가 신청하러 가기 https://forms.gle/SLC1Xvz5VSjUFEPJA
👉 위로회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https://yhrjieum.kr/20240505
✅ [첫 번째 인터뷰 읽기]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진심인 응원은 기부” 체벌에 대한 공적 논의를 바라는 지지자 지우 님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