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뚝딱 지음 43호] 공현의 투덜리즘 -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설득한다는 건 대단한 일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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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공현의 투덜리즘

-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설득한다는 건 대단한 일


“네 주장이 그렇게 옳다면, 어디 한번 네 가족부터 설득해 봐라.”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곧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 등 가족에게 이야기해서 설득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과연 타당한 주장이냐, 뭐 그런 말입니다. 두발자유 이야기였나, 입시경쟁폐지 이야기였나, 청소년 정치 참여 이야기였나, 성소수자 이야기였나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니까 어쩌면 전부 다일 수도 있습니다.(그러고 보니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난 후에는 저런 말을 덜 듣게 된 거 같은데요. 어라? 이거 혹시 나이가 적을 때 더 많이 듣게 되는 말인가요? 그러면 청소년 차별적인 인식도 관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저는 제일 먼저 이런 대꾸가 떠오르더라고요. “가족이니까 설득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가족부터 설득해 봐라’라는 말은 가족은 가까운 사람이고, 고로 더 설득하기 쉬울 거라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런가요? (누구에게나 가족이 가까운 사람일지도 의문이지만)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대화나 토론, 설득이 더 어려운 경우를 많이 겪습니다.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기 위해 선명한 비판을 못 하기도 하고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가족끼리는 정치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더구나 청소년기에는 부모를 포함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가족들에게 말이 안 먹힐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나이 어린 청소년이고, 피보호자·피양육자라고 여겨서 내려다보는 문화와 태도가 있으니까요. 또한 청소년에 대하여 친권자가 바라는 대로 살기를 요구하고 열공하여 사회적 성공을 이루길 바라곤 하는 많은 한국 가족의 상황에서는,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생각의 타당성과 별개로 그 자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습니다. 그럼 ‘(네 생각도 일리가 있지만) 그런 공부에 도움 안 되는 생각은 하지 마라’ 같은 대답을 듣게 될 겁니다. 이렇게 보면 가족이 더 설득하기 힘들다는 것이 경험적 진실 아닐까요? 결국 ‘가족부터 설득’ 논리는 틀린 가정에 기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이 사회와 가족 안에서 놓인 위치와 권력관계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도 드러냅니다.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레퍼토리로, ‘평범한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운동을 그만두는 사람으로부터, 대략 ‘우리 거리 캠페인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가는 행인을 봤다. 그 평범한 행인을 설득하지 못하면 운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소구할 수 있도록 홍보 방법 등을 고민하고 개선하는 것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사람을 설득해라’라는 생각에는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먼저 이런 말은 ‘평범한, 운동을 안 하는 사람’과 ‘평범하지 않은, 운동을 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분은 과연 타당한 걸까요? 저항이나 투쟁을 백안시할 수 있는 ‘평범함’이라면 그 자체가 사회의 주류성, 기득권은 아닐까요? 사실 ‘평범한 대중’이라는 범주 안에도 다양한 속성과 삶의 조건과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나요? 가령 눈살을 찌푸리고 간 그 행인이 실은 주말마다 반공 집회에 나가는 극우주의자였다면요? 이런 구분이 오히려 우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걸 가로막지 않나 싶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평등하고 대등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설득하여 변화시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입니다. 저 사람이 나와 같은 삶의 무게와 사상·생각·입장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내가 저 사람을 설득하는 건 커다란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한 사람도 아니고 수백 명, 수천 명, 때로는 수천만 명을 상대로 말을 걸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설득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요? 그래서 저는 운동은 저 혼자서 누구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공동으로 힘을 합쳐서 꾸준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사회와 사람들을 설득하고 변화시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럿이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제도와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나 반감을 갖던 사람들도 조금씩 다시 생각해 볼 가능성이 생기겠지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생각이 같은 사람들, 청소년인권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들을 모으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가족이나 지나가는 행인 말고, 함께 운동을 할 동료 활동가들을 조직화하는 게 운동의 첫걸음인 이유입니다.




🔸 '공현의 투덜리즘'은 예전에 공현이 함께 만들었던 〈오답 승리의 희망〉의 간판 코너명이었는데요. 오승희를 기리는 마음으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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