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력이 우선이라는 말의 함정 - 모든 학생이 학업에서 성공해야 할까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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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이 우선이라는 말의 함정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모든 학생이 학업에서 성공해야 할까                                     

 코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일정 수준을 설정하여 '기초학력'으로 삼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습 지원을 하는 것이 골자인 '기초학력 보장법'이 2021년 9월 제정되었다. 또한 2022년 10월, 전국 특정 학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전수평가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 일명 일제고사가 부활했다.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는 것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였다. 물론 교육부에서는 학교에 선택권이 있으므로 '일제고사'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향한 시험이나 공부 압박, 강요는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사실상 일제고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 더해 서울에서는 2023년 3월, 기초학력진단평가의 성적을 외부에 공개하는 내용의 기초학력평가 성적 공개 조례가 제정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소해서 현재 집행 정지 중에 있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이런 상황들은 '학생이 기초학력을 갖추는 것',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력은 당연히 중요한가 

'학력(學力)'은 학습 능력(academic ability), 즉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잠재적) 능력을 말하기도 하고, 학교, 혹은 학업적 영역에서의 성취를 이르는 학업 능력(academic achievement)을 말하기도 해서, 정의만 두고 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영어권 국가들에서는 두 가지를 조금 더 엄밀히 분리해서 쓰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같은 한자로 두 의미를 모두 다루고, 한국 교육 정책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주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결과로 얻게 된 성취도(시험 성적)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학력, 성적 향상은 통상적으로 '보수 진영에서 주로 강조하는 의제'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은 '진보 교육감'의 선거공보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이슈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겠다', '공교육이 학생들의 성적을 책임지겠다.' 등 방법을 막론하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도모하는 것 자체는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는 일대일 교습이 아닌 만큼, 학교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내용의 어려움이 문제일 수도 있고, 학생의 환경, 개인적 사고나 사건 등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 자체가 개인에게 적합하지 않은 경우 등, 이유와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이에 대한 공교육의 대안은 보충수업, 방과 후 교실, 야간자율학습 등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학습하게 하고 공부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거나, 시험을 더욱 자주 보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없앴을 때, 학생들의 성적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무수했다.

 

학생을 '들들 볶는' 학력 정책 

교실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따라가기 벅찬 난이도의 수업을 들으며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은 분명 괴롭다. 때문에 학습 내용의 이해와 성취를 돕는 것은 필요하고, 학생의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는 그 기초 학력의 기준과 목적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그저 시간이 지날수록 기준이 급격히 상향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기초학력이 매우 러프하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를 이해하는 정도(간단한 사칙연산이나 한글을 말하고 읽고 쓰는 정도, 한국의 정치가 어떤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지 등)를 말했다면, 이제는 기초학력의 정의와 내용을 법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각 학교급, 학년별로 촘촘히 설정하고 이를 성취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범위도 늘어나고, 난이도도 올라가고 있다. 

이를 가장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이 영어 교육인데, 20년쯤 전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알파벳, 간단한 단어나 표현 등을 소개하고 짧은 문장이나 글을 읽도록 하는 정도였던 데에 비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시작 학년이 낮아지고, 사회적으로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한국의 수능 영어 문제를 영어권 사람들도 풀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20년간 인류의 뇌가 급격히 발달해서, 현재의 학생들이 예전의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은 내용, 더 어려운 내용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일까? 사회의 변화 때문에 우리는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배우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일까? 애초에 모든 아동·청소년이 학업적으로 성공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가?

생활에 꼭 필요한 영역의 학습에 대해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사람은 모두가 같은 속도로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의 수와 비율을 측정하고 그 증감률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유용한 일이 아니다. 만약 어떤 교수법에 문제가 있어서, 혹은 내용 자체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학습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평가 자료를 참고해서 교수법을 바꾸거나 학습 난이도를 조정하는 등 교과 과정의 향상에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교육 정책은 낮은 성적을 거둔 학생이 곧 문제이고, 이런 모습을 고쳐야 한다고 상정하고 있다. 심지어 학력 진단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된다는 것은, 학력이 낮은 것을 도움을 받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일이 아니라 부끄럽고 잘못한 일로 치부하겠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일제고사 점수를 공개하고 성적이 좋은 순으로 햑교에 차등적 인센티브 등을 지급한 결과, 학교는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차근차근 돕는 대신, 모든 학생들을 늦게까지 학교에 남도록 강요하고 시험 예상 문제를 풀게 하는 등 학생들을 '들들 볶는' 대처를 했다. 성적을 조작해서 평균을 끌어올리는 식의 방법도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줄어든 것과 별개로, 개별 학생들은 필요한 도움을 받기는 커녕 인권 침해를 경험하게 될 뿐이었다. 

 

'기초학력 미달 제로'는 잘못된 표어 

시험을 학력 향상의 도구로 쓰는 것은, 학생들이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더욱 공부에 시간을 투자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시험을 보는 행위 자체는 학력 향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은 다시 배우는 과정도, 이해를 돕는 과정도 아니라, 단지 학생이 성취한 것을 점수라는 지표로 환산하는 작업에 가깝다.

학생들이 성적을 높이려고 애쓰게 되는 이유는, 거둔 성적에 따라 생활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험을 못 본,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곱지 않은 시선(매우 둥글게 말하면)을 받고, 양육자에게 혼나거나 용돈 삭감 등 금전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성적이 입시에 활용되는 것일 때는 더욱 치명적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규격화된 시험 점수가 나쁜 것을 곧 지능이 낮은 거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서 '머리 나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지능이 낮은 것이나 배우는 속도가 더딘 것을 욕으로 쓰는 것은 차별적이지만, 매우 흔한 게 사실이다. 

배울 의욕을 높이거나,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서 기꺼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주지시키고 실패를 벌해서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라도 참고 하도록 만드는 것이 배움이라면, 과연 사회는 이것을 모든 청소년들에게 강요해도 되는 것일까? 

이미 한국 교육은 실제로 삶이나 직업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장이 아니라 윗사람과 제도가 요구하는 바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그 내용에 대한 흥미가 아니라 결과에 뒤따르는 상과 벌을 동기로 삼아 학생들을 더욱 촘촘하게 '변별'하는 도구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학력이라는 것은 이미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

학력을 높여 주겠다는 말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내용을 학생들이 더 잘 누릴 수 있도록 학생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입시를 잘 치르도록 해주겠다는 선거용 공약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입시는 상대평가이고 모두가 잘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공약은 거짓말이다.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아진다거나,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은 학교 시스템,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학습 내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학력 저하'라는 우려는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들에게 창피를 주고 억지로 시험을 위한 공부를 강제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의 '비율'을 줄이는 것은 더더욱 개별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기초학력 미달 제로"와 같은 표어를 내세우기 이전에, 기초학력의 기준, 그리고 이 기준선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에 도움이 될 지를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는 지음의 활동가들이 함께 작성하며, '프레시안'을 통해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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