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1991년 투쟁과 고등학생운동 30주년 ① - 청소년들의 투쟁과 열사에 대한 존중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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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투쟁과 고등학생운동 30주년 ①

- 청소년들의 투쟁과 열사에 대한 존중


1991년 4월 26일, 대학생 강경대가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 많은 사람이 노태우 정권을 비판하고 민주화와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는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 와중에 여럿이 분신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분신으로 항거했던 박승희 열사나 그 뒤의 김영균, 천세용 열사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고등학생 때 고등학생운동에 참여하고 1989년 전교조 출범과 해직 사태 때에도 전교조 지지 투쟁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1명, 고등학생운동 출신의 열사가 있습니다. 5월 18일, 전남 보성고 3학년 김철수 학생이 분신, 6월 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철수 열사는 풍물패, 교내 동아리 등에서 고등학생운동을 해왔습니다. 김철수 열사는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가 인간적인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목숨을 던져가며 정부와 사회의 폭력성과 불의를 고발하고 변화를 촉구하고자 했던 이들의 뜻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왜곡당했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죽음을 선동, 사주하는 배후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을 퍼뜨렸고 공안사건을 조작했습니다. 특히나 김철수 열사를 비롯해 당시 투쟁에 동참했던 청소년들은, 누군가에게 세뇌당했다거나 조종당한 거라는 공격에 더 많이 노출되었습니다. 김철수 열사는 물론 1990년 학교의 탄압 때문에 죽은 김수경 열사 등은 '성적비관' '학교에 부적응'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라는 등 그 죽음의 저항적 주체적 성격을 지우려는 음해를 당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음해에 맞서 청소년의 순수성을 강조하려는 모습이나 청소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역설적으로 열사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훼손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김철수 열사 등이 죽은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린 학생이 죽게 해선 안 됐다'라고 한다거나, 청소년들의 투쟁에 대해 '교단에서 쫓겨나는 선생님을 지키려 한 순수한 마음에서 한 것'이라고 기억하는 것 등이 그 예일 텐데요. 하지만 그 시대의 고등학생운동은 민주화운동/변혁운동의 일부로서 한국 사회와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정치적 의식과 조직을 가진 운동이었고, 김철수 열사 등 역시 그러한 운동에 참여하다가 고민과 결단 끝에 죽음으로 저항하기를 택한 것입니다. 김철수 열사가 나이가 적은 고등학생이었다는 이유로 그래선 안 됐다고 하거나 다른 열사들과 다르게 대하는 것은 차별적, 보호주의적 시선입니다. 이는 결국 다른 형태로 청소년을 운동의 주체,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열사들이 죽음으로 사회의 불의를 지적하려 한 것을 안타까워할 수도 있고, 그 방법이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평가하고 고민해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먼저 사람들이 목숨을 던져가며 저항하게 내몰았던 폭압적이고 비민주적이었던 정권과 사회/교육 현실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열사가 죽음으로써 전하고자 한 메시지와 의미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1991년 투쟁 3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더 인간적인 학교와 사회를 바랐던 김철수 열사와 그때 운동에 함께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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