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청소년인권을 말하다] "'똥머리' 금지, 속옷, 양말 외투도 규제" 아직도 학교가 이래? - '민주적 절차로 만든 규칙'이 해답이 아닌 이유

202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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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머리' 금지, 속옷, 양말 외투도 규제" 아직도 학교가 이래?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민주적 절차로 만든 규칙'이 해답이 아닌 이유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선 2021년에 학교 현장의 두발·복장규제 등의 인권 문제에 대응할 일이 많았다. 3, 4월에 언론 보도된 수십 개 중고교의 속옷 규제, 양말 규제, 외투 규제, '똥머리' 금지 같은 사례들은 시민들에게 "아직도 학교가 이런가?" 하는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이러한 반인권적 사례가 학생인권조례 제정 10년 차를 맞이한 서울 지역에도 많았다는 점에서, 학생인권조례로 학생인권 문제가 모두 해결되진 않음을 드러냈다. "획일적 두발규제가 인권침해이므로 개정하라"라는 국가인권위 권고를 받았으나 1년 넘도록 묵살한 대구 영남고, 대전 한밭고의 사례는 학교가 얼마나 변하지 않으려 하는지, 그리고 왜 현행 제도하에서 인권위 권고만으론 학생인권 문제에 효과적인 구제가 될 수 없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학교의 인권침해 사례를 알리면서 두발·복장규제 등의 학칙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면 교육부나 교육청으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학칙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할 문제이다." 학교들 역시 반인권적 학칙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면 비슷하게 대답한다. "학칙은 학교에서 나름의 절차를 거쳐 정한 것이다. 개정할지 말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 

얼핏 보면 틀린 게 없는 말인 듯하지만, 학생인권 문제에 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은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사실 2000년에 두발자유 캠페인과 온라인 서명운동이 일어나 두발규제 문제가 최초로 공론화되자 교육부가 내놓았던 답변이 바로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학칙을 제·개정하라"였다. 결국 2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런 방침과 태도가 두발규제를 비롯한 학생인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게 가로막아온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왜 학생의 인권만 도마 위에 오를까 


학교 안에서 학생 포함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은 비민주적이거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별도의 공론화나 예고도 없이 학생회 임원을 불러서 의견을 묻고는 학생 의견을 반영했다고 하는 경우도 여럿 접해봤다.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더라도 학생들에게 충분한 발언과 토론 기회를 주지 않거나, 교사들이 학생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위축시키는 모습이 드물지 않다. 

그나마 학생인권에 관한 관심과 의식이 높아진 요즘은 문제가 불거져 학칙을 개정할 때는 학생·교사·보호자(학부모) 설문조사라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가만히 뜯어보면 이상한 구석이 많다. 예컨대 학생들은 70~80%가 두발규제 폐지를 원한다고 설문 결과가 나오더라도 교사·보호자 중 반대 의견이 많으면 두발규제가 유지되는 식이다. 그 규정을 적용받을 일이 결코 없을 교사·보호자들의 의견이 크게 작용하여, 학생들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도 학생의 인권을 제한하는 학칙이 유지되는 것이다. 수직적이고 나이주의적인 한국 사회의 문화와 학교의 구조상 학생들로서는 교사·보호자들에게 제대로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할 기회를 얻기도 어렵다. 이러한 절차를 과연 '민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발·복장규제를 포함하여 '학생생활규정'은 대개는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제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왜 학생들의 인권과 자유만 학칙으로 제한할지 말지, 얼마나 제한할지를 논의하는 도마 위에 올라야 하는가? 여기에서부터 이미 학교의 불공평한 권력관계가 개입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의 평등을 대원칙으로 삼는단 점에서 이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다. 

덧붙여 대부분의 학칙 개정 논의는 기존의 반인권적 학칙이 유효한 상황 속에 그것을 어떻게 바꿀지를 논의하는 구도를 가진다. 그러다 보면 그 규칙 자체를 없애는 안 혹은 크게 변화시키는 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에, 약간의 개선에만 그칠 때가 많다. 여러모로 불공평하고 기울어진 구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가 동의해도 인권침해는 인권침해일 뿐 


무엇보다도, 두발·복장과 같은 인권의 문제를 학교 규칙으로 규제하게 맡겨 놓는 것은 명백하게 반인권적이다. 개인의 사적 자유로 보장되어야 할 영역을 집단적 결정에 따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 중에서도 개인의 머리카락 모양, 옷차림이나 액세서리, 패션 등 개성에 해당하는 부분, 사생활에 해당하는 영역은 더더욱 함부로 제한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설령 두발규제에 학생의 90%가 찬성하고 10%가 반대하여 두발규제가 존치되었다고 하더라도, 10%의 학생들로서는 동의 없이 자유 제한을 당하는 셈이다. 찬반의 숫자가 얼마든 동의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필요성 및 정당성이 없는 두발·복장규제는 그저 부당한 인권침해일 뿐이다. 공청회, 설문조사, 투표 등을 거쳐서 정한 규칙이라고 해서 인권을 마음대로 제한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일부 제한될 수 있다. 학교에서도 함께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규칙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요리사가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머리를 짧게 유지하거나 요리할 때는 머리수건·조리모를 쓰도록 정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는 규칙일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두발·복장규제는 '학업 분위기 유지'라거나 '학생다운 단정한 모습' 같은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인 고정관념에 따라 강요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절차만 밟았다면 학칙으로 학생의 두발·복장이나 사생활을 규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학생들의 개성과 사생활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민주적 선거에 따라 구성된 정부나 국회라 해도 만약에 모든 국민의 헤어 스타일을 규제하는 법을 만든다면 당장 사람들의 강력한 반발을 살 것이다. 실제로 과거 독재 정권에서는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일을 벌였고, 오늘날에는 그것이 반인권적 행정이자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풍경이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 속에 우리 사회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정해진 법령도, 개인의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한다면 행정소송이나 헌법재판 등을 통해 부당함을 확인받고 무효화할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 문제에서는 '학교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최소한의 인권 기준이나 구제 장치도 없이 그저 학내 의견 수렴을 거쳐 학칙을 정하라는 말만 반복되고 있다.

학교의 학생인권 침해를 지적했을 때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의견 수렴 등 민주적 절차를 거쳐 바꾸라'라고 하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인권침해 여부가 아니라 절차의 문제와 다수 의견이 무엇인지의 문제로 옮긴다는 면에서 부적절하다. 한국 정부는 20여 년째 학생의 인권 문제를 학교 자율에 맡긴다고 하거나 학내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규칙을 정해야 할 문제라고만 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학교의 자율성이나 학내 민주주의에 관심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학생의 인권을 그만큼 가볍게 여기고 제한당해도 괜찮은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학생의 인권에 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학교의 학칙이 학생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경우 시정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며, 학생인권이 침해당했을 때 구제받을 통로를 마련하는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는 지음의 활동가들이 함께 작성하며, '프레시안'을 통해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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