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청소년인권을 말하다] n번방 사건, '여성 청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 성폭력에 대한 대처로 청소년의 자유가 위축되어선 안 돼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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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여성 청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성폭력에 대한 대처로 청소년의 자유가 위축되어선 안 돼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활동가



'n번방'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몇 년 전 청소년이었을 때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떠올랐다. 아는 비청소년 남성이 잠시 만나자고 해서 만나러 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피곤하다며 모텔에 가서 잠시만 자고 싶다고 같이 가달라고 했다. 아는 사이이고 별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에 따라갔다. 모텔 입구에서 그 사람이 작은 창문을 통해 결제를 했고, 나는 잘 보이지 않아 신분증 검사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모텔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처음 이야기한 것과 달리 그 사람은 잠을 자러 온 것이 아니었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나의 몸을 함부로 만졌고, 자신의 성기를 억지로 만지게 시켰다.

처음에는 힘으로 저항해봤지만 나보다 힘이 강해 상처만 생겼다. 이 상황이 너무나 끔찍했다.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할까 고민했지만 그 사람에게 다시 붙잡힐까 두려워서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그리고 청소년이 숙박업소에서 혼숙을 한 경우 업주가 영업정지를 당할 테니, 모텔 주인도 나를 전혀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이후에도 경찰서에 신고를 할지 말지 수천 번을 생각했지만 신고 과정에서 부모와 주변 사람에게 알려져 '청소년인데 모텔 간 것이 잘못 아니냐.', '네가 원해서 모텔 간 것 아니냐.', '이래서 청소년 보호법 강화해야 된다.' 등의 말을 들으며 비난받을까 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경험과 닮아 있는 n번방 사건 


10대 때 나의 성폭력 경험과 n번방 사건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n번방 사건에서도 여러 여성 청소년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겪은 피해를 이야기하지 못했고 오히려 협박을 당했다. 여성 청소년은 성폭력, 성착취 피해 사실을 선뜻 주변에 알릴 수 없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피해자인데도 자신이 비난받거나 폄하를 당할까 두려워하게 된다. 청소년이라면 성폭력 피해를 이유로 자신의 독립성을 제약당하게 될까 봐,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 '청소년답지 않은' 행실을 비난받을까 봐 이야기하기를 더 꺼리게 된다. 

강간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로빈 월쇼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에서는 '청소녀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하는 것, 금기시된 장소에 가는 것, 허락 없이 데이트를 하는 것 등이나 성적으로 적극적인 것 등에 대해 부모가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하기보다는 비난할 것이라고 염려'(129쪽)한다고 지적했다. 여성 청소년 피해자들은 한층 더 복합적인 이유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수록 이는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많은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역으로 부모에게 알리겠다며 협박하곤 한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나에게 성폭력을 가한 비청소년 남성도 나의 정보, 부모 연락처에 대해 알고 있었고, 내가 부모에게 성폭력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부모를 통해 연락해서 나를 다시 불러내기도 했다. 이후 나는 가해자에게 위협을 무릅쓰고 성폭력에 대해 항의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오히려 내가 당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운동을 하던 것을 언급하며 “학생인권 이야기하면서 성적인 것은 싫냐, 원하는 것은 성인처럼 하고 싶고 원하지 않는 것은 성인처럼 하기 싫냐”는 말로 대꾸했다. 

가해자의 이 말을 살펴보면 청소년의 인권과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단적으로 담겨 있다. 본래 누구든지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는 '성인이 아니므로 성적인 것들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라는 규범이 더 우선된다. 청소년들을 가둬 두는 이러한 울타리에 문제 제기하고 자유를 바라는 것은, 곧 아무런 보호도 받지 않겠다거나 성적 행위를 하겠다는 의미인 것처럼 오해받는다. 청소년이 인권과 자유를 요구하는 것을 보호가 필요없다는 말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물론, 성적 자기결정권 자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n번방 사건의 여성 청소년 피해자들 중에는 소위 '일탈계'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일탈계'는 익명이 보장된 상태에서 자신의 노출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성적인 표현이나 교류를 시도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이 계정을 해킹해 '일탈계' 주인의 개인정보를 알아냈고 이를 가지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여성 청소년이 '무성적' 존재여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일탈계'에 대해 알린다는 협박은 큰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성폭력 피해를 겪었음에도 나설 수 없었다. n번방 사건이 고발된 뒤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일탈계'를 한 여성 청소년들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적인 것을 택한 여성 청소년 피해자들에게 성폭력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청소년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성폭력의 본질이 '폭력'임을 지우는 일이다. 


여성 청소년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책은 잘못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많은 이들이 사건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시된 것들 중 몇 가지는 여성 청소년의 자유를 제한하려 드는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2020년 3월 2일 '여성-엄마 민중당'의 총선 공약에서 그루밍 성범죄 처벌법 제정 방안을 발표한 것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이 공약 내용 중에는 “부모 동의 없는 미성년자와의 만남 행위 처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성적 행위를 요구하거나 이를 유발할 수 있는 대화를 시도하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청소년의 사생활을 더욱 친권자의 감시하에 두게 하고 청소년의 성적인 행동을 금기시하게 만들 수도 있는 정책이다. 

이외에도 트위터와 페이스북 게시물 및 댓글에서는 '일탈계'를 올리지 못하게 핸드폰을 압수해야 된다.', '부모의 동의 없이 연애할 수 없게 해야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n번방 사건에 대한 분노가 청소년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 피해자인 성범죄에 대한 대처로 청소년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는 대책이 나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피해자 탓하기이다. 


n번방 사건의 논의가 피해 여성 청소년에게 힘을 싣기 바라며 


n번방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이야기하면서, 이번에 나의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해 처음 공개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은 지금까지 살면서 쓴 글 중 가장 긴 시간동안 고민하고 고통을 느끼며 써내려간 글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가해자에게 연락이 올까 봐, 주변 지인들이 비난할까 봐 두려웠다. 이런 고민과 갈등 속에서도 청소년 인권과 페미니즘의 언어를 얻어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이 글을 통해 가장 바라는 것은 n번방 사건을 통해 고통받고 있는 여성 청소년들이 자신의 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함께 싸우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n번방 사건은 피해 여성 청소년의 탓이 아니다. n번방 사건의 가해자·피해자 중 상당수가 10~20대이고 온라인 매체를 적극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요즘 젊은 세대들의 특별한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부터 한국 사회의 성착취와 강간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있었고 매체와 방식만 달라져 왔음을 인정해야 된다. 그동안 성폭력과 성착취를 쉽게 용서하고 수용해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과 대처가 필요하고, 성착취와 강간 문화가 단절되어야 한다. 

그리고 n번방 사건이 오랜 강간 문화의 일부이듯, n번방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나 대처 중에서도 그동안 청소년을 통제해 온 한국 사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청소년의 자유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연결되어선 안 된다. 한국 사회의 전반의 강간 문화가 공고한 상황에서 청소년은 '무성적'이어야 한다는 규범은 오히려 청소년을 안전할 수 없게끔 한다. 청소년의 성적 욕구나 욕망을 부정적으로 볼수록 청소년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청소년의 섹스, 가출 등을 이유로 숙박업소 이용이 불법인 상황에서 모텔에서 폭력적인 상황을 겪게 되어도 뛰쳐나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의 성적 욕구가 부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었을 때 피해자가 당당할 수 있다. 앞으로 이루어질 여성 청소년이 성폭력의 피해자인 사건을 논의할 때, 여성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하면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가 논의의 밑바탕이 되길 바란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는 지음의 활동가들이 함께 작성하며, '프레시안'을 통해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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