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청소년인권을 말하다] 30년 전 한 고3 학생의 투신 "이미 그곳은 학교가 아닙니다" - 김수경 열사 30주기,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들

2020-07-09
조회수 2017

30년 전 한 고3 학생의 투신 "이미 그곳은 학교가 아닙니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김수경 열사 30주기,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활동가



2020년 6월 6일, 대구 근교 현대공원에서 열린 '참교육의 등불 김수경 열사 30주기 추모제에 여러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참석했다. 추모제는 열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학생인권과 학교 민주주의의 문제, 청소년 참정권, 세월호 참사 등 우리 사회의 현안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지면을 빌어, 김수경 열사 30주기에 청소년인권운동의 입장에서 기억해야 할 것, 되새겨야 할 과제들을 짚어 본다.

"이미 그곳은 학교가 아닙니다"

김수경은 1990년, 대구 경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1989년에는 전교조 창립으로 교사들이 해직된 데에 저항하며 전교조를 지지하는 학내 시위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있었고, 1990년 당시에는 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활동 때문에 학교에서 '찍혀' 있었다. 담임 교사가 김수경의 부모에게 김수경이 "학교에서 주시하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하는 등 김수경은 교사들로부터 일상적·지속적으로 압박과 감시를 당했다.

그러다 6월 5일, 체육 교사가 김수경 외 1명의 학생에게 따귀를 때리는 등의 폭행을 가한 뒤 무릎을 꿇리고, 김수경에게 "반항적인 행동이 보였다", "퇴학 처분" 등의 막말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직후 김수경은 "한번 운동권으로 찍힌 학생은 사사건건 트집이 된다", "(전교조를 지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가 학교 다니기가 불편하다면, 아니 고통스럽다면 이미 그곳은 학교가 아닙니다", "모두들 제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았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영남대학교에서 투신했다. 그는 2004년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목소리 내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학교 


김수경 열사가 죽음에 이른 경위를 살펴보면, 한국의 고등학교가 정치적 활동을 하고 저항적인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김수경은 전교조 교사 해직에 반대하며 시위를 한 일, 학생회장 선거에서 학생들을 대변하는 후보의 찬조 연설을 한 일, '써클에 가입되어 있다'는 의심 등 때문에 '반항적이다', '운동권이다'라고 낙인찍혔다. 

그런데 학내 시위를 한 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행사하며 교육 현안에 대해 의견을 표출한 것이고, 정치적 모임에서 활동했다 하더라도 이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결사의 자유이며, 학생회장 선거에서 찬조 연설을 한 것이나 학생회 활동을 한 것도 처벌이나 불이익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의 학교에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수경 열사 30주기 추모제.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김수경 열사 30주기 추모제.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30년 전에 비해서 청소년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분명 나아졌다. 학교 안에서 목소리 내는 학생들이 부담해야 할 억압의 강도도 약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많은 학교들이 학생의 정치·사회단체 가입을 금지하는 학칙과 언론·표현의 자유 등을 규제하는 징계 기준 등을 두고 있다. 촛불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 스쿨 미투 등 학교 안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제보한 학생들이 교사들로부터 위협이나 압력을 받은 사건들은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학교가 공식적 징계 조치를 취하는 일이 줄어들자, 교사들이 그런 학생에 대한 따돌림·괴롭힘을 선동하거나 묵인하는 유형의 탄압이 더 늘어난 듯도 하다.

학생회는 또 어떠한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 이후로 중고교에서도 학생회장 직선제 등을 통해 자주적인 학생회를 만들고 학교 민주화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김수경도 학생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고, 이는 학교가 김수경을 '주시'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오늘날에는 학생이 학생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고 해서 부정적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생회장 출마나 공약 발표, 연설 등에서부터 통상의 활동에까지 학교 측에게 간섭을 당하기 일쑤이다. 특히 학생회가 학생들의 권익을 주장하고 학교를 바꾸려고 나설 경우에는 많은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 학생회 등을 통해 학교 운영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권리는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보장되지 않고 있다. 즉 학생회 활동은 형식적으로는 잘 꾸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목소리 내는' 학생회는 환영받지 못하고 '힘을 가진' 학생회는 더더욱 요원한 현실이다.


사라지지 않은 자의적 폭력, 모욕적 처벌 


김수경 열사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두 번째 요인은 바로 체벌 등의 폭력이다. 김수경 열사는 교사의 자의적인 체벌과 언어폭력,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리는 등의 모욕적인 처벌을 당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에서는 이러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었다. 이와 같이 교사가 체벌 등의 자의적인 폭력을 얼마든지 가할 수 있는 조건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는 일이었던 동시에, 학교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두렵게 하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탄압의 수단이기도 했다. 마치 경찰이 시민에게 고문, 구타 등의 자의적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사회 전반의 인권 문제이면서 민주화운동·저항운동 등을 하는 활동가들이나 정치 인사들을 위축시키는 요소인 것처럼 말이다.

김수경 열사의 죽음 이후에도 오래도록 학교에서의 체벌은 당연하게 존속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몇몇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나 관련 법령 개정, '아동복지법' 개정 등으로 학교에서의 체벌이 금지된 것으로 인식되고 감소했다. 하지만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는 '구타형(직접) 체벌'은 중고생의 28.2%가, '강요형(간접) 체벌'은 중고생의 35.8%가 당하거나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2019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초·중·고 학생 조사에서도 12.2%는 교사로부터 체벌을 경험했고 18.9%는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나타나는 등 학교 체벌이 사라졌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교육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직접 때리지 않는 유형의 체벌은 허용한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내놓은 뒤로, 체벌이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엄격히 금지되어야 할 것이란 명확한 선언이나 법령 개정 등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교사의 체벌 등으로 학생이 다치거나 죽은 사건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데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근래에도 교사가 학생에게 모욕적 처벌을 가해서 학생이 자살한 사건 등이 벌어졌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벌 등을 옹호하고 학생을 비난하곤 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교사나 보호자에 의한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자의적 폭력이 허용되고,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욕적 처벌에 대해 경각심이 부족한 사회였고, 변화는 아직 더디다. 이처럼 청소년을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현실이 바로 김수경 열사를 죽게 만든 범인일 것이다. 


1990년과 2020년 사이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 벌어졌던 중·고등학생들이 주체가 된 변혁운동을 '고등학생운동'이라고 일컫는다. 고등학생운동은 단지 30여 년 전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고등학생운동에서 외치고 드러냈던 학교의 민주주의, 청소년의 인권, 선거권 연령 하향 등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경쟁교육의 문제 등은 오늘날에도 과제로 남아 있다. 김수경 열사 역시 고등학생운동의 주체였으며 학교의 정치적 탄압과 폭력성에 희생당한 사람이었다. 한국의 고등학교는 자신이 죽인 김수경 열사를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고 있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은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이 남긴 과제를 곱씹어야 한다. 

보통 김수경 열사에 더하여, 1990년에 '농민의 깃발, 노동자의 횃불, 참교육의 함성'을 외치며 죽은 심광보 열사, 1991년에 잘못된 교육을 비판하고 '참교육 실현'을 외치며 죽은 김철수 열사의 3명을 고등학생운동의 열사로 꼽고는 한다. 사실 나는 이들 중에서도 김수경 열사가 유독 더 눈에 밟히곤 한다. 김수경 열사가 학교의 폭력에 상처 입고 죽음을 택했다는 측면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임미리는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2017, 오월의봄)에서 열사의 자살에 '당위형'과 '실존형'이라는 분류를 제시했다. 김수경 열사는 '개인에게 구체적 폭력이 가해지는 중에 일상의 경험에 기초한 분노의 감정을 바탕으로 주체의 존엄성 회복을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실존형의 죽음에 더 가까워 보인다. (비록 임미리는 책에서 김수경, 심광보, 김철수 열사를 모두 '당위형'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김수경 열사의 경우는 실존형으로, 적어도 '당위적 실존형'으로 분류하는 게 더 적절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수경 열사 30주기를 맞아 30년 전과 현재의 청소년들의 처지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폭력과 억압을 비교해 보게 된다. 1990년의 김수경과 2020년의 청소년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여전히 남아 있는 '적폐'가 있다면 왜 이토록 오래 바뀌지 못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자찬하지만, 과연 학교 현장과 청소년들의 삶에는 민주주의가 왔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정치적 활동을 하고 저항적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학교, 자의적 폭력과 인격을 짓밟는 폭력이 허용되는 학교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김수경 열사에 대해 이렇게 돌아보는 만큼, 마찬가지로 심광보 열사와 김철수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그들이 죽음으로 외쳤던 것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올해 9월에 맞이할 심광보 열사 30주기와 내년에 있을 김철수 열사 30주기에는 다시 한 번, 청소년인권운동이 그들을 기억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는 지음의 활동가들이 함께 작성하며, '프레시안'을 통해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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