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논의에 왜 어린이청소년의 권리는 빠졌나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18세 미만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으로서
한국정부는 1991년 11월 20일, 이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올해로 30년 가까이 되었네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금까지 총 4차례에 걸쳐 한국의 어린이‧청소년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중요한 개선 과제를 한국정부에 권고해왔는데요.
최근에는 '노키즈존' 문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어요.
이번 카드뉴스는 ‘노키즈존’을 어린이.청소년 인권의 문제로 접근할 때,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함께 관심 가져주세요!😄
*2019/11/04 프레시안 연재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에 실은 글입니다.
(전문 읽기)

[1]
'NO 노키즈존'의 세상을
'노키즈존' 논의에 왜 어린이청소년의 권리는 빠졌나

[2]
'노키즈존’ 찬반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보통 '무개념 부모'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양육자들이 갈 곳이 없다'는 문제로 이야기되곤 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노키즈존'이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에 관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3]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사회에서 점점 늘어가는 '노키즈존'을 비롯한 여러 어린이·청소년 인권 실태에 대하여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왜 아무도 아동의 편에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4]
갑질을 자주 일삼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특정하여 "몇 살에서 몇 살까지는 진상 손님일 것 같으니 들어오지 마십시오" 할 수 있나?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큰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사례가 있나?

[5]
우리 사회가 어떤 소리와 행동은 받아들이면서 어떤 소리와 행동은 이질적으로 느끼며 불편해하는지가 핵심인지도 모른다. 같은 소리라 해도 '어른들'이 내는 소리는 받아들이지만 '아이들'이 내는 소리에는 유독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다.

[6]
‘노키즈존’은 어린이·청소년들에게 한 명의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암묵적인 메시지 같기도 하다. 결국 '노키즈존'은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차별이며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어린 사람의 특성이라고 '짐작되는' 요소들을 싫어하고 배제해도 된다는 감각이 만들어낸 '어린이·청소년 혐오'이다.

[7]
소란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회, 소음에 대한 관용이 줄어드는 사회, '공공장소를 이용하고 머무를 권리'보다 '누군가가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있을 권리'가 우선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어떤 사람만 살 수 있는 곳인가. 특정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은 '가진 사람'만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과 닮아있다.

[8]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공장소에 입장하고, 머무르고, 누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모습이든, 어떤 정체성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권리는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다. 어린이청소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 'NO노키즈존'의 세상을
'노키즈존' 논의에 왜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는 빠졌나 (전체 읽기)
'노키즈존' 논의에 왜 어린이청소년의 권리는 빠졌나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18세 미만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으로서
한국정부는 1991년 11월 20일, 이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올해로 30년 가까이 되었네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금까지 총 4차례에 걸쳐 한국의 어린이‧청소년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중요한 개선 과제를 한국정부에 권고해왔는데요.
최근에는 '노키즈존' 문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어요.
이번 카드뉴스는 ‘노키즈존’을 어린이.청소년 인권의 문제로 접근할 때,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함께 관심 가져주세요!😄
*2019/11/04 프레시안 연재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에 실은 글입니다.
(전문 읽기)
[1]
'NO 노키즈존'의 세상을
'노키즈존' 논의에 왜 어린이청소년의 권리는 빠졌나
[2]
'노키즈존’ 찬반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보통 '무개념 부모'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양육자들이 갈 곳이 없다'는 문제로 이야기되곤 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노키즈존'이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에 관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3]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사회에서 점점 늘어가는 '노키즈존'을 비롯한 여러 어린이·청소년 인권 실태에 대하여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왜 아무도 아동의 편에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4]
갑질을 자주 일삼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특정하여 "몇 살에서 몇 살까지는 진상 손님일 것 같으니 들어오지 마십시오" 할 수 있나?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큰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사례가 있나?
[5]
우리 사회가 어떤 소리와 행동은 받아들이면서 어떤 소리와 행동은 이질적으로 느끼며 불편해하는지가 핵심인지도 모른다. 같은 소리라 해도 '어른들'이 내는 소리는 받아들이지만 '아이들'이 내는 소리에는 유독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다.
[6]
‘노키즈존’은 어린이·청소년들에게 한 명의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암묵적인 메시지 같기도 하다. 결국 '노키즈존'은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차별이며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어린 사람의 특성이라고 '짐작되는' 요소들을 싫어하고 배제해도 된다는 감각이 만들어낸 '어린이·청소년 혐오'이다.
[7]
소란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회, 소음에 대한 관용이 줄어드는 사회, '공공장소를 이용하고 머무를 권리'보다 '누군가가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있을 권리'가 우선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어떤 사람만 살 수 있는 곳인가. 특정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은 '가진 사람'만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과 닮아있다.
[8]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공장소에 입장하고, 머무르고, 누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모습이든, 어떤 정체성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권리는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다. 어린이청소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다] 'NO노키즈존'의 세상을
'노키즈존' 논의에 왜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는 빠졌나 (전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