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열일곱 번째 이야기] 대견하다, 기특하다

[대견하다, 기특하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유독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참 대견하다”, “기특하네” 같은 말들이에요. 분명 긍정적 평가가 담긴 칭찬의 말인데요.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때가 있어요. 어떤 청소년들은 그런 말을 듣는 게 불쾌하다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우선 대견하다는 말이 ‘어른이 어린 사람에게만 하는 말’이라는 것부터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10대 청소년이 40-50대의 비청소년에게 “연세도 많으신데 이런 생각을 하시다니 대견하시네요.”라거나 “참 기특하네요.” 같은 말을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어떤가요? 그 이유를 불문하고 무례하다거나 버릇없다는 반응이 돌아오기 쉬울 것입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다소 당황하긴 하겠죠. 청소년들에겐 그런 말을 잘 써왔던 사람이라도 말이에요.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말할 땐 “존경스럽다”, “대단하다”, “훌륭하다”라거나 “놀랍다” 정도의 말을 하는 게 고작일 것이고, 나이 어린 청소년이 나이 많은 사람을 평가하듯 말했단 것만으로도 불쾌하다고 하는 사람도 없진 않을 거 같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대견하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이나 그 언행이) 보기에 흡족하고 자랑스럽다.”로 뜻풀이가 등재되어 있고, “기특하다”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그 생각, 언행 따위가) 뛰어나고 특별하여 귀염성이 있다.”라고 등재되어 있습니다. 예문도 대부분 아이, 후배, 학생들 등 나이가 더 어린 사람들에 대해 쓰는 말로 나와 있네요. 즉,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나이 어린 사람 또는 자기보다 아랫사람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고서 쓰는 것입니다.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평가하며 만족스럽다거나 귀엽다거나 놀랍다는 맥락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말을 듣는 청소년 입장에선 별로 대등한 존재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만하지요.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대견하다”, “기특하다” 같은 말이 쓰이는 상황은 어린이·청소년이 사려 깊은 모습을 보이거나 선행을 할 때가 대부분인데요. 여기에서는 어린이·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생각이 짧고, 보호받거나 도움받는 위치에 있는 게 보통인데 그걸 벗어나는 것이 특별하고 특출나게 뛰어난 것이라는 어감을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어린이·청소년 일반에 대한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 거지요. 특히 정치적 문제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활동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사회적 참여와 활동을 자연스럽지 않은 것, 특이하고 예외적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도 차별적입니다.


“대견하다”, “기특하다” 같은 말이 왜 나이 차별적일 수 있는지를 살펴봤는데요. 좋게 생각해서 한 말인데 이게 왜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의도가 어땠는지와 상관없이, 그 말이 상대방이 어린 사람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은 아닌지, 그 말 속에 이미 담겨 있는 사회적 관계와 맥락과 고정관념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대견/기특하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을 평가하여 칭찬하거나 질책할 수 있다는 습관적인 태도가 반영되어 있진 않았을까요? 상대방을 아랫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과연 자신이 그런 말을 썼을지 곱씹어보면 어떨까요?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열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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