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열 여덟 번째 이야기] 짐승, 동물


[짐승, 동물]

몇 년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동 수업 이후에 제 책상에 성희롱 문구가 적힌 걸 발견한 적이 있어요. 교사에게 알렸더니 “남자아이들은 아직 짐승이라 그렇다”라며, 여자아이들이 이해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듣게 될 때면, 왜 성폭력을 괜한 짐승들에게 떠넘기느냐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여성 어린이·청소년들이라고 ‘짐승’ 혹은 ‘동물’ 취급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성별과 무관하게) 어린이·청소년은 이성과 사회성을 아직 갖추지 못한, 온전하지 못한 존재로 여겨져요. 이럴 때 “아직 인간이 덜 되었다” 같은 식으로 말하곤 하죠. 이런 인식은 어린이·청소년의 미성숙함을 관대하게 대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린이·청소년을 말이 안 통하는 존재로 간주하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바뀔 거라는 나이주의적인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러니까 애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 “어른과 달리 강제로 통제해야 한다”라며 폭력과 억압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반대로 어린이·청소년을 ‘우리 강아지~’와 같이 부르며 귀여워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어린이·청소년들을 인간 외의 작은 동물에 빗대는 것은 이들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이자 약하고 귀여운 존재로만 취급하기 때문 아닐까요? 다른 한편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작은 몸이나 행동을 보며 아이 같다 하고, 가족 중의 ‘아이’ 포지션에 둔 호칭을 사용하는 일이 잦습니다. 

어린이·청소년이 사회의 기준에 못 미칠 때 ‘인간이 덜 된 짐승(동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중의 차별과 편견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어린이·청소년은 비청소년들과는 동등하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로 타자화하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비인간 동물은 인간에 비해 열등하고 덜 발달된 존재라는 생각이고요.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 아래에서는, 어린이·청소년도 동물도 작고 무해하고 귀여울 때는 보호와 사랑의 대상이 되고, 위협적이거나 틀을 벗어날 때는 공포와 혐오와 통제의 대상이 되어요.

어린이·청소년을 ‘인간이 덜 된 존재’라 하고 짐승(비인간 동물)의 위치에 놓는 관점은, 오랜 시간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것을 정당화해왔어요. 좋은 감정이 담겨 있든 나쁜 감정이 담겨 있든 어린이·청소년을 동물에 빗대는 것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쉽게 벌 주거나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내려다보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이·청소년기의 특성도 동물로서의 특성도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모두에게 존재하는 삶의 토대이자 기초적 요소잖아요. 이를 성인-인간과 구별하고 더 못나고 잘못된 것이라 하는 것이 바로 차별의 논리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열 여덟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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