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여덟 번째 이야기] 급식(충)

[급식(충)]


어린이·청소년, 특히 초·중·고 학생을 부르는 인터넷 신조어 중 ‘급식’ 또는 ‘급식충’이 있어요. 이 표현은 2010년대 초중반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청소년들을 ‘급식충’이라고 칭하는 말이 나오면서 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충’이라는 말이 너무 대놓고 비하하는 어감이다 보니 ‘충’을 떼고 ‘급식’이라고 순화(?)해서 쓰이기도 하지요.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한다고 간주되는 인터넷 말투를 ‘급식체’라고 부르는 등의 활용례도 존재하고요.

인터넷이나 게임 등에서 ‘충’이라는 말을 붙여서 누군가를 ‘벌레’라고 비하하는 문화는 여러 상황, 여러 집단에 대해 널리 쓰입니다. 여성혐오 단어인 ‘맘충’이라든지, AOS 게임에서 특정 캐릭터에 집착하는 사람을 ‘(캐릭터이름)-충’이라고 부른다든지, 농담이나 유머가 잘 통하지 않거나 진지한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을 부르는 ‘진지충’이라 한다든지 여러 예가 있어요.

그런데 그중 나이에 관련해서 유독 많이 쓰이는 말은 ‘급식충’과 ‘틀딱충’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나이주의 속에서 어린이·청소년과 노인이 주된 차별,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아요.

청소년에 대한 멸칭으로 ‘급식’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2010년 초반, 초등학교 무상급식 정책이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던 것이 끼친 영향이 있을 거라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초·중·고 학생이라고 하면 급식이 바로 연상되게 된 거죠. 또한 ‘(무상)급식’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부르는 것에는, 그 사람이 사회에 ‘기생’하여 ‘공짜 밥’을 먹는다는 의미, 자유와 선택권 없이 주는 대로 밥을 먹는다는 의미 등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비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상급식 먹어라”라고 할 때 그 의미가 감옥에 가라는 뜻이거나 노숙인이 되라는 비꼬거나 저주하는 의미라는 것을 떠올려 봅시다. 즉, ‘급식(충)’이라는 호칭은 단지 그 사람들이 평일 하루 한 끼를 급식으로 먹는 사람들이라는 가치 중립적 사실 진술이 아니라, 비하의 문맥과 의미를 담은 평가적인 말입니다.(그에 비해, 가령 ‘외식’은 이러한 멸칭의 대상이 되기 어려워요.)

사실 혐오표현에 먹는 것이 연결되는 일은 비교적 흔한 모습인데요. 특정 문화권의 사람을 그 사람이 먹는 특징적인 음식이나 향신료, 식재료의 냄새 등과 연관해서 비하하는 경우도 많고요. ‘급식충’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청소년을 낮춰 부르던 언어의 계보 속에서 좀 더 노골적인 혐오표현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어린이·청소년을 비하, 혐오하며 부르는 말들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급식(충)’이 처음은 아니에요. 애들, 초딩, 중딩 등을, ‘급식(충)’이 대신하게 됐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인터넷 등에서 청소년들을 배제하고 욕할 때 “급식이냐?”, “급식은 가라”, “다음 급식충”이라고 하는 등의 사례들을 자주 접할 수 있지요. 다만 ‘급식’이라는 말은 좀 더 조롱하는 느낌이 있고 재미있는 조어라는 이유로, 더 센 느낌을 주는 말이라는 이유로 몇 년 사이에 널리 퍼져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은 이렇게 어린이·청소년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언어 표현을 돌아보려 합니다. 청소년들을 ‘급식(충)’이라고 부르는 문화에는 청소년에 대한 어떤 차별적 인식이 담겨 있는지, 그리고 그런 말이 쓰이는 맥락과 상황은 왜 문제인지 성찰하면 좋겠습니다. 또, ‘급식(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에게 붙는 여러 이름들이 나이주의적, 차별적·혐오적인지 살펴볼 계기가 되면 좋겠네요.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일상 언어 속 차별 문제 '여덟 번째 이야기'입니다!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