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8일
사단법인 두루, 국회 여성ㆍ아동인권포럼, 국가인권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린
아동의 사법접근권 보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자료집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공현 활동가가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사단법인 두루 홈페이지 링크
[토론문]
아동의 사법접근권은 인권 침해 구제와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책임활동가
개인적 경험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처음으로 청소년인권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고등학교에서 겪던 각종 인권침해에 항의하고자 내가 처음으로 했던 저항은 어떻게 보면 무척 소심했다. 바로 「헌법」과 「아동권리협약」의 조항 몇 개를 A4 용지에 인쇄해서 등굣길 현관 앞에 붙여놓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렇게 헌법과 국제법에 똑똑히 나온 권리들을 너무나 대놓고 어기는 학교 현실에서, 이런 법이 있다는 것을 공개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저항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 게시물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은 채 몇 시간만에 떨어졌다.
인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이나 여타 국제인권법, 그리고 인권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국내법들에 의지하게 된다. 아동인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추상적인 원칙인 인권은 종종 법조문의 형태로 각종 권리들과 그 실현 방식이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알게 된다.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특히나 인권을 보장한다는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말이다. 학교 안 청소년활동가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체벌, 언어폭력, 두발복장단속 등 인권침해에 대해 이건 위법이라고 주장하면, 어느 학교에서는 ‘그러면 신고해 보든가 그러냐’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사법적 해결을 가로막는 장벽들
사실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주로 다루는 아동인권 문제(학생인권, 참정권 등)에서 사법적인 해결을 전혀 검토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발규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능한지를 논의해 본 적도 있고, 만 20세 또는 만 19세로 선거권·피선거권·선거운동·정당활동을 제한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헌법소원도 내 봤다. 운동 차원에서는 아니지만, 학생들 개개인이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는 학교장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한다든지, 체벌을 경찰에 신고한다든지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법의 벽이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비용의 문제야 아동이 아니어도 공히 마주하는 장벽이니 일단 넘어가자. 그런데 우선 아동이 헌법재판이든 민사재판이든 행정소송이든, 원고가 되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적잖은 친권자들이 아동인권에 무관심하거나 때로는 아동인권 침해의 동조자인 점, 또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소송 같은 부담스러운 일에 자신/자식이 엮이지 않길 바란단 점에서 만만찮은 허들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헌법재판 등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데, 10대 중후반에 소송을 시작하면 이미 20대가 된 후에야 판결이 난다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그런 제한이 없는 형사소송도 그렇고 대부분의 경우 재판에서 그리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도 어려웠다. 2010년대까지 명백한 폭행·상해인 체벌 행위도 ‘정당한 훈육’이라고 무죄 판결을 받기 일쑤였으니까 말이다. 판검사들을 포함해 법조계가 펼쳐 보는 법전 안에는 아동인권의 기준과 중요성이 그리 많이 적혀 있지 않은 듯했다.
사법적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대표적인 예가 학교 내 종교 강요 행위가 불법 행위이므로 손해 배상을 하라는 결과를 민사 소송을 통해 얻어 낸 것이다. 2004년 서울 대광고 종교자유 투쟁 이후 진행된 이 소송은, 고등학생 당사자 강의석 씨가 학교를 졸업한 2005년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면서 시작됐고, 2010년에야 최종 승소했다. 그는 이 소송을 통해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가 인권 침해이자 불법임을 확실히 하고 학교에서 함부로 종교 강요를 못 하게 하고자 했다. 하지만 민사 소송 결과에도 불구하고 학교 내 종교 강요 사례가 근절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학교에 민사 소송을 건다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대중적인 구제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원이 인권에 대해 판단하고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사법접근권의 열악함은 인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걸로 연결된다.
최근 몇 년 새 아동학대 관련 신고와 소송이 늘고 있다. 학대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과거부터 존재해 온 모습들, 사건들이 아동학대 관련 법이 정비, 강화되면서 국가가 개입하고 사법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동학대’ 개념으로 다루어져 마땅한 문제들이 발굴되고 대처가 시작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난점도 눈에 띈다. 가령 아동인권에 대한 침해라고는 판단할 만하지만 학대라고 보기는 어려운 여러 경험들이 아동학대로 신고되면 어떻게 될까? 언어폭력이나 차별 행위 등이 정서적 학대로 신고되는 것이 해당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신고·재판 결과에선 아동학대로 판단받지 못하고 그러면 당사자가 무혐의·무죄가 되고 끝이다. 아동학대라고 인정되진 않더라도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언행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벼운 일로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한다’라는 불만과 우려가 커지게 된다.(이는 특히 최근 교사 집단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관련 절차로 다종다양한 아동인권에 관련된 문제들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아동인권 침해를 구제할 만한 창구가 많지 않고, 어찌 보면 아동학대 관련 절차들이야말로 현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사법접근의 창구이기 때문은 아닐까.
입법과 사법, 권리 구제에 대한 개선
아동의 사법접근권 보장을 고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동의 인권 전반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사법 영역이 아닌 입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인권 문제에서도 학교에서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라는 자치법규 제정을 꾀했고, 현재도 「초·중등교육법」 및 관계 법령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아동인권에 관해서는 법의 공백이 너무 많아서 사법을 위해서는 우선 입법부터 필요할 지경이다. 법 자체를 새롭게 바꿔서 아동인권의 기준을 제시하고, 아동의 의견 진술 및 비차별 원칙 등을 사법 영역에서도 세우고, 아동이 사법 제도를 믿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발제에서의 지적대로 현재 한국에는 아동 영역의 통합적 기본법이 존재하지 않고 아동인권의 기준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아동기본법을 준비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에 대한 아동인권 교육의 효과도 얻고, 사법적 판단에서 아동인권이 반영될 기틀을 세워야 한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의 인권단체들에서는 「아동권리협약」의 국내 이행 법률의 성격을 가지면서 아동 분야 기본법으로 작동할 수 있는 ‘아동(어린이·청소년)인권법’의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 당시 공약으로 아동인권법 제정을 내걸었음에도 임기 말이 되어서야 정부 차원에서 언급됐을 뿐 전혀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나, 윤석열 정부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쉬운 노릇이다.
직접적으로 사법 영역을 개선하는 것도 주요 과제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했듯 권리 구제를 위해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데에도 아동은 법정대리인 동의를 필요로 하고, 각종 법률 행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민법」에서 친권 제도와 법정대리인을 두는 것은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이 제도가 반대로 아동의 권리 구제를 가로막는다면 거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어린이·청소년을 사법 영역에서 위축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기 기본권의 구제를 요구하는 경우 등에는 특히 이런 제한이 없어야 한다. 법정대리인에 무조건적으로 종속된 법적 지위를 개선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법 체계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거나 오해를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린이·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소년법」(소위 ‘촉법소년’ 담론 등)에 관한 정보도 그렇고 여러 관련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된 이야기를 접한 경우가 많다. 그런 한편 사법 절차를 겪는 아동들은 경찰·검찰·법원 등에서 고정관념을 가지고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사법 제도가 작동하고 구현되는 것은 결국 현장의 인력들과 법조인들, 조사와 재판의 경험 등을 통해서이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 변호사를 늘리고 법조인들을 교육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사법접근권 보장에는 대응 역량을 강화해 아동의 인권이 함부로 침해당할 수 없게 예방한다는 의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사법 제도 안에서도 직접적 인권 침해와 차별을 예방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법접근권을 단지 직접적 사법부-재판 절차에 관한 것 이상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재판은 보통 비용과 시간 등 여러 측면에서 모두에게 열린 구제 절차가 되기 어렵고, 이 문제는 단기간에 쉽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아동에게는 더더욱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상황이 조성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재판보다 더 신속하면서도 유연한 구제 절차를 여러 층위, 여러 경로로 만들고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옴부즈퍼슨 제도 등이 그 하나의 예일 텐데, 아직까지는 권리 구제 절차로 제대로 기능한다고 보기 어려운 듯하다.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 조력과 지원이 필요한 아동에 대한 지원 체계를 사법 제도와 준사법적 절차, 비사법적 절차 등에서 다양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2023년 4월 18일
사단법인 두루, 국회 여성ㆍ아동인권포럼, 국가인권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린
아동의 사법접근권 보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자료집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공현 활동가가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사단법인 두루 홈페이지 링크
[토론문]
아동의 사법접근권은 인권 침해 구제와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책임활동가
개인적 경험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처음으로 청소년인권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고등학교에서 겪던 각종 인권침해에 항의하고자 내가 처음으로 했던 저항은 어떻게 보면 무척 소심했다. 바로 「헌법」과 「아동권리협약」의 조항 몇 개를 A4 용지에 인쇄해서 등굣길 현관 앞에 붙여놓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렇게 헌법과 국제법에 똑똑히 나온 권리들을 너무나 대놓고 어기는 학교 현실에서, 이런 법이 있다는 것을 공개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저항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 게시물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은 채 몇 시간만에 떨어졌다.
인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이나 여타 국제인권법, 그리고 인권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국내법들에 의지하게 된다. 아동인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추상적인 원칙인 인권은 종종 법조문의 형태로 각종 권리들과 그 실현 방식이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알게 된다.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특히나 인권을 보장한다는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말이다. 학교 안 청소년활동가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체벌, 언어폭력, 두발복장단속 등 인권침해에 대해 이건 위법이라고 주장하면, 어느 학교에서는 ‘그러면 신고해 보든가 그러냐’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사법적 해결을 가로막는 장벽들
사실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주로 다루는 아동인권 문제(학생인권, 참정권 등)에서 사법적인 해결을 전혀 검토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발규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능한지를 논의해 본 적도 있고, 만 20세 또는 만 19세로 선거권·피선거권·선거운동·정당활동을 제한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헌법소원도 내 봤다. 운동 차원에서는 아니지만, 학생들 개개인이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는 학교장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한다든지, 체벌을 경찰에 신고한다든지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법의 벽이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비용의 문제야 아동이 아니어도 공히 마주하는 장벽이니 일단 넘어가자. 그런데 우선 아동이 헌법재판이든 민사재판이든 행정소송이든, 원고가 되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적잖은 친권자들이 아동인권에 무관심하거나 때로는 아동인권 침해의 동조자인 점, 또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소송 같은 부담스러운 일에 자신/자식이 엮이지 않길 바란단 점에서 만만찮은 허들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헌법재판 등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데, 10대 중후반에 소송을 시작하면 이미 20대가 된 후에야 판결이 난다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그런 제한이 없는 형사소송도 그렇고 대부분의 경우 재판에서 그리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도 어려웠다. 2010년대까지 명백한 폭행·상해인 체벌 행위도 ‘정당한 훈육’이라고 무죄 판결을 받기 일쑤였으니까 말이다. 판검사들을 포함해 법조계가 펼쳐 보는 법전 안에는 아동인권의 기준과 중요성이 그리 많이 적혀 있지 않은 듯했다.
사법적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대표적인 예가 학교 내 종교 강요 행위가 불법 행위이므로 손해 배상을 하라는 결과를 민사 소송을 통해 얻어 낸 것이다. 2004년 서울 대광고 종교자유 투쟁 이후 진행된 이 소송은, 고등학생 당사자 강의석 씨가 학교를 졸업한 2005년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면서 시작됐고, 2010년에야 최종 승소했다. 그는 이 소송을 통해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가 인권 침해이자 불법임을 확실히 하고 학교에서 함부로 종교 강요를 못 하게 하고자 했다. 하지만 민사 소송 결과에도 불구하고 학교 내 종교 강요 사례가 근절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학교에 민사 소송을 건다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대중적인 구제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원이 인권에 대해 판단하고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사법접근권의 열악함은 인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걸로 연결된다.
최근 몇 년 새 아동학대 관련 신고와 소송이 늘고 있다. 학대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과거부터 존재해 온 모습들, 사건들이 아동학대 관련 법이 정비, 강화되면서 국가가 개입하고 사법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동학대’ 개념으로 다루어져 마땅한 문제들이 발굴되고 대처가 시작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난점도 눈에 띈다. 가령 아동인권에 대한 침해라고는 판단할 만하지만 학대라고 보기는 어려운 여러 경험들이 아동학대로 신고되면 어떻게 될까? 언어폭력이나 차별 행위 등이 정서적 학대로 신고되는 것이 해당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신고·재판 결과에선 아동학대로 판단받지 못하고 그러면 당사자가 무혐의·무죄가 되고 끝이다. 아동학대라고 인정되진 않더라도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언행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벼운 일로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한다’라는 불만과 우려가 커지게 된다.(이는 특히 최근 교사 집단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관련 절차로 다종다양한 아동인권에 관련된 문제들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아동인권 침해를 구제할 만한 창구가 많지 않고, 어찌 보면 아동학대 관련 절차들이야말로 현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사법접근의 창구이기 때문은 아닐까.
입법과 사법, 권리 구제에 대한 개선
아동의 사법접근권 보장을 고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동의 인권 전반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사법 영역이 아닌 입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인권 문제에서도 학교에서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라는 자치법규 제정을 꾀했고, 현재도 「초·중등교육법」 및 관계 법령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아동인권에 관해서는 법의 공백이 너무 많아서 사법을 위해서는 우선 입법부터 필요할 지경이다. 법 자체를 새롭게 바꿔서 아동인권의 기준을 제시하고, 아동의 의견 진술 및 비차별 원칙 등을 사법 영역에서도 세우고, 아동이 사법 제도를 믿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발제에서의 지적대로 현재 한국에는 아동 영역의 통합적 기본법이 존재하지 않고 아동인권의 기준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아동기본법을 준비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에 대한 아동인권 교육의 효과도 얻고, 사법적 판단에서 아동인권이 반영될 기틀을 세워야 한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의 인권단체들에서는 「아동권리협약」의 국내 이행 법률의 성격을 가지면서 아동 분야 기본법으로 작동할 수 있는 ‘아동(어린이·청소년)인권법’의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 당시 공약으로 아동인권법 제정을 내걸었음에도 임기 말이 되어서야 정부 차원에서 언급됐을 뿐 전혀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나, 윤석열 정부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쉬운 노릇이다.
직접적으로 사법 영역을 개선하는 것도 주요 과제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했듯 권리 구제를 위해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데에도 아동은 법정대리인 동의를 필요로 하고, 각종 법률 행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민법」에서 친권 제도와 법정대리인을 두는 것은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이 제도가 반대로 아동의 권리 구제를 가로막는다면 거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어린이·청소년을 사법 영역에서 위축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기 기본권의 구제를 요구하는 경우 등에는 특히 이런 제한이 없어야 한다. 법정대리인에 무조건적으로 종속된 법적 지위를 개선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법 체계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거나 오해를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린이·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소년법」(소위 ‘촉법소년’ 담론 등)에 관한 정보도 그렇고 여러 관련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된 이야기를 접한 경우가 많다. 그런 한편 사법 절차를 겪는 아동들은 경찰·검찰·법원 등에서 고정관념을 가지고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사법 제도가 작동하고 구현되는 것은 결국 현장의 인력들과 법조인들, 조사와 재판의 경험 등을 통해서이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 변호사를 늘리고 법조인들을 교육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사법접근권 보장에는 대응 역량을 강화해 아동의 인권이 함부로 침해당할 수 없게 예방한다는 의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사법 제도 안에서도 직접적 인권 침해와 차별을 예방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법접근권을 단지 직접적 사법부-재판 절차에 관한 것 이상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재판은 보통 비용과 시간 등 여러 측면에서 모두에게 열린 구제 절차가 되기 어렵고, 이 문제는 단기간에 쉽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아동에게는 더더욱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상황이 조성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재판보다 더 신속하면서도 유연한 구제 절차를 여러 층위, 여러 경로로 만들고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옴부즈퍼슨 제도 등이 그 하나의 예일 텐데, 아직까지는 권리 구제 절차로 제대로 기능한다고 보기 어려운 듯하다.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 조력과 지원이 필요한 아동에 대한 지원 체계를 사법 제도와 준사법적 절차, 비사법적 절차 등에서 다양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