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열린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토론회 - 지속 가능한 관계의 기반 함께 만들기' 자료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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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표인 공현 활동가의 발표문은 본문으로도 소개합니다.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관계
- 사회운동 입장에서 원칙 정립의 필요성과 다른 가능성 모색 제안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책임활동가
누적된 경험의 공론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이 꾸준히 사회운동(인권운동)과 정당정치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비판적 논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창립 초기 치명적이었던 관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단체를 처음 만들 것을 제안한 쥬리 활동가(강민진)가 단체 출범 이전, 2019년 정의당으로부터 ‘청년대변인’ 자리를 제안받았고, 대변인 임기 종료 후 지음 활동에 복귀할 것이라 약속하고 대변인에 취임하였으나, 이후 여러 갈등과 번복 끝에 2020년 초 지음을 그만두었고, 지음에서는 운동적 논의와 동의 없는 정당 영입 및 약속을 파기한 것을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막 출범을 준비 중이던 지음과 그 구성원들에게 큰 고통이었을 뿐 아니라 지음과 연관된 주변 운동 주체들과도 상당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지음은 “▲ 활동가의 공직 진출은 단체/운동의 운동적·정치적 결정이어야 합니다. ▲ 공직 활동은 단체/운동의 지지·협력과 판단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 사회운동은 정당정치 및 정부 참여와 다른 독립적 영역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라는 원칙을 제시하는 입장문(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성명, 운동의 공직/정치 진출에 대한 원칙 공유를 위하여, 2020년 4월 14일.)을 발표했다. 강민진이 연대체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공동집행위원장도 맡고 있었기에, 2020년 6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는 ‘대표성 있는 인물의 정당/공직 진출 시 거쳐야 할 절차’로 운영위 논의를 거칠 것, 조직의 의견에 반하거나 논의 없이 일어난 경우 조직과 개인을 분리시키는 입장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 등의 내용을 합의했다. 이후 5년이 넘게 지나서야 이렇게 이 문제의식을 더욱 구체화하고 더 널리 공유하게 된 것은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2020년의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처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인권운동의 인접운동인 교육운동과 교육감 선거의 경험이 있다. 2010년 이후로 다수 지역에서 소위 ‘민주진보 교육감’들이 당선되면서 교육운동의 추는 서서히 교육감 선거 및 행정으로 기울게 되었다. 함께 교육운동을 하던 교사 또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가 교육청 관료로 들어가면서 지역의 운동 주체들이 급감해 연대체 활동이 멈춘 적도 있다. 교육감 선거 때면 지역의 단체들이 다들 선거에 매진하지만, ‘민주진보 교육감’을 당선시킨 뒤에는 운동이 전혀 교육감의 행보를 제어할 수 없고, 현직 후보가 이후 ‘민주진보’ 타이틀을 독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비록 교육감 선거는 공식적으론 정당이 관여하지는 않지만, 이는 정치권력과 사회운동 사이의 불균형한 관계 그리고 사회운동이 선거와 행정에 동원되면서 초래되는 운동의 약화를 체감하게 된 사례였다. 그렇기에 2019년 5월, 나는 교육공동체 벗에서 ‘교육운동, 왜 자꾸 작아지는가’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선거와 공직 참여, 가능성일까 족쇄일까’라는 발제를 배치하기도 했다.
경선과 선거 과정의 기여도로 입성한 활동가들은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한 채 개인의 입신양명의 기반이 되어 오히려 교육청의 입장을 대변하고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의 관변화 또는 시민사회단체가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최명선 발제문, 〈교육감 후보 경선과 시민사회단체의 역할〉, 2019년 5월 11일.)
지음이 2020년 공식적으로 비판 의견을 밝힌 뒤에, 같은 결의 경험과 문제의식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여성공감이 배복주 전 대표의 행보에 관하여 “인권운동 활동가, 특히 현직의 대표가 정당의 제안으로 급작스럽게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의 문제, 진보적 장애인 운동에서 젠더 억압에 대한 이슈는 계속 주변화되고, 장애여성 단체에게 일임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채 선거 시기가 오면 장애여성 활동가가 대표성을 띠며 추천되는 정치참여가 반복되는 문제, 비례대표의 의미와 장애여성 정치세력화 등”의 문제에 대해 내부적 토론이 있었으나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입장(장애여성공감 배복주 전 대표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한 장애여성공감의 입장, 2024년 3월 9일.)을 발표했던 것이 대표적 예이다. 노동운동-민주노총에서도 전 간부 등의 정당 지지 선언, 노동부 장관 임명 등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던가. 그 밖에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소속 활동가가 갑자기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직으로 옮기면서 곤란한 상황 또는 불신이 초래된 경험, 대표자가 선거에 출마하자 그 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선거운동을 하느라 전화를 돌렸던(그리고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던) 경험, 단체의 비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개인 활동가가 거대정당 후보나 정부기구 위원으로 참여하며 논쟁이 생기는 일 등 사회운동 내에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어 왔다.
정당정치의 사회운동 식민화
우리는 사회운동이 정치에 고민 없이, 규범 없이 밀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식은 ‘운동이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거나, ‘정당은 운동단체가 아니다’라는 등의 말, 혹은 ‘사회운동은 모두 정치적’이라는 말 등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국가권력을 다루는(또는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정치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익적 가치로 꾸려지는 사회운동은 엄연히 그 성격과 영역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권운동/사회운동이 정치적[진보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물론 비정치성/중립성을 요구하는 잘못된 관념에 대응하는 맥락에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그간 이러한 말만 되풀이한 결과, 사회운동이 정치와 맺는 관계를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적절한 방식과 지침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가리고, 그저 제도권 정치에 적극 진출하는 것이 좋은 것이거나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단면적 생각을 부추기진 않았나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먼저, 사회운동의 주된 역할 중 하나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당의 주요 목적은 입법·행정에 관한 국가권력을 얻어내고 장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이상 권력을 쥐고 있는 정당과의 관계에서 사회운동은 원칙적으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이 정당과 지나치게 밀착하면 운동 고유의 목적의식과 가치로 정부나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것을 망설이게 되고 사회운동의 활동 방식과 의견이 왜곡될 우려가 크다.(사회운동단체 중에는 사실상 정당의 산하 또는 외곽 단체로 기능하는 곳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사회운동의 일반적 형태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이러한 경우 정당운동의 일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둘째 이유는 사회운동의 독립성 또는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니, 사회운동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운동과 정당이 밀착하거나 무분별하게 인적 유착이 일어날 때 운동단체는 특정 정파의 ‘외곽단체’, ‘관변단체’라고 인식되며 운동의 고유한 가치와 목적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사회운동의 의제나 성과는 언론이나 대중에게 정치의 공으로 여겨지곤 한다. 여기에는 사회운동의 부족 탓도 있으나 정당정치의 화법과 홍보방식 등의 탓도 있으며, 이런 문제는 인적 유착 속에 더욱 심화된다.(더 자세한 예시들은 1차 ‘사회운동과 정당정치 토론회’의 [난다 발제문, 사회운동과 정당 정치의 관계 - 쟁점과 문제의식을 짚으며 더 나은 기반을 만들어가기, 2025년 11월 23일]을 참고.) 그리고 편의상 ‘밀착한다’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사회운동과 정당 사이에서 조직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는 제대로 된 밀착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
애초에 사회운동과 제도권 정당 사이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입법·행정 영역에서 권력을 갖고 있고, 돈이든 명예든 사회적으로 인정이든 관심받는 정도든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정당 쪽에서 더 강한 인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내정당에서 어느 운동의 활동가를 영입하려는 것은 단지 개인적 이직이나 전직 제안이 아니라, 돈과 명예와 직위를 유인으로 그 운동의 상징성과 이미지와 역량을 가져가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생활세계에서부터 싹트고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회운동은 정치권력을 가진 정당에 의해 식민화(하버마스에서 차용한 단어임)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이러한 원리와 구도 아래 현재 한국 사회운동의 상당부분이 거대정당들에 종속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의 논의는 ‘진보정치’가 아니라 정당정치 일반, 특히 제도권 정당(집권정당이거나, 원내정당이거나, 기초자치단체장이라도 당선된 정당, 교육감 당선자의 세력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국가권력과 거리가 먼 정당, 원외 좌파 정당 등은 평소 현실에서는 사회운동 단체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정당들도 선거에 출마하고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잠재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 동일하게 대우하진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문제의식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이건 어찌 보면 그 정당들의 당선/집권 가능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것이다) 특히 이른바 ‘진보정당’이라고 분류되는 정당들 역시 원내정당으로 존재하면서 같은 문제가 발생, 반복되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에 이러한 논의에서 진보정치도 예외일 수 없다.
과거에는 민주정부라 하더라도 김영삼 김대중 정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는 시민사회 인사들의 정부 진출이 조금씩 정당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진보 인사들이 진보적인 정부에 들어가서 보수적 관료사회를 쇄신하며 진보적 정책들을 생산하고 정부와 협력하며 견인해야 한다는 논리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중략)
시민사회는 ‘신선한 인물’과 ‘도덕적 인물’의 공급처, 인력풀처럼 여겨졌다. 정당은 새로운 인물들을 마치 ‘신상품’처럼 정치 마케팅에 활용했다. 이것을 가장 잘 한 정당이 민주당이다. (중략)
진보정당도 이런 이미지 정치 방식을 답습했다. 특히 원내 의석을 가진 진보정당은 제도정치권에서는 소수정당이라도 사회운동 안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차 ‘사회운동과 정당정치 토론회’, 채효정 발제문,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관계 정립을 위해 -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권력구조, 2025년 11월 23일.)
사회운동 활동가가 민주당에 영입되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잘못이고, 어느 진보정당(원내 진출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가정하자)에 영입되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지만 그 진보정당은 지지하거나 우호적이기 때문일 따름이다. 단체의 운동적 판단이 없이 개인이 운동의 성과를 가져가서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것도, 권력자가 되어서 변화를 이루겠다는 반민주적인 변명도 별 차이가 없다. 만약 진보정당에의 영입/진출이 용인된다면 민주당에의 영입/진출도 그 사람 개인의 정치 성향 및 이념에 따라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 ‘진보정당은 다르다’라고 말하려 한다면, 상대적인 진보성이나 국민의힘·민주당보다 낫다는 정도 이상으로 사회운동과 관계를 맺는 방식, 정치를 하는 방식 그 자체에서 질적인 차이가 있어야 한다. 즉 진보정당이 정말로 무언가 다른, 대안적 정치세력이라면 사회운동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며 사회운동을 도구화하거나 식민화하거나, 인재풀처럼 대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사회운동(인권운동)의 원칙 정립
우리의 문제의식은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경험하고, 서술한 것이다. 다만 지난 토론회에서는 진보정치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행태와 관계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며 ‘같이 망하는’ 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왜냐면 진보정치가 정말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이 함께 강화되어야 하는데 사회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은 스스로 발판을 부수고 좁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한편에선, 진보정당 자체적으로 내부에서 정당활동가와 정치인을 성장시키고 양성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외부로부터의 영입에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 역량과 통일성을 해치게 될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던지는 논제는 어쩌면 진보정치의 입장에서도 운동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진보정당이 진보정당답기 위해 풀어야 하는 숙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로 위협과 대처 필요성을 더 강하게, 가깝게 느끼는 것은 일단 사회운동 쪽인 듯하다. 단적으로 진보정치운동 주체들 쪽에서 먼저 이러한 논의를 제안하고 적절한 규범과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는 전혀 없다시피 했다. 진보정당들에서는 사회운동과의 부적절하고 도구적인 관계가 당장의 피해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근시안적 입장에서는 이득이 더 크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따라서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사회운동 측에서 먼저 거리와 윤리를 선언하고, 최소한의 규범과 판단 기준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정당 일반을 대상으로 하며 특히 원내정당을 비롯해 제도권 정당에 초점을 맞춘, 소위 ‘진보정당’이라 분류되는 정당들도 예외로 하지 않는 원칙과 규범이어야 한다. 정당정치에 의한 사회운동의 식민화에 제동을 걸고, 사회운동의 독자성과 존재 가치를 지키며, 대중적 신뢰를 회복해 나가고 사회운동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방편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기성 거대정당들이나 교육감 등 국가권력에 끌려가며 사회운동이 약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다.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사이의 적절하고 지속가능하고 서로에게 도움과 발전이 되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현시점에서는 ‘진보’나 ‘좌파’를 자임하는 정당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지음을 비롯해 몇몇 단체들은 단체의 대표나 상임활동가가 곧바로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당 당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단체 활동을 그만둔 뒤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가능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유사한 강령은 언론사 등에도 있다) 또한 지음 활동가 원칙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더라도 “정당 및 공직에 진출할 목적으로 지음 활동을 이력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지음 활동 과정에서 알게 된 개인정보, 보안 및 보호가 필요한 정보를 정당 활동 및 공직 활동에 이용하지 않는다. 활동에 의해 얻게 된 각종 사회적 자원의 이용에도 조심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인적 진출의 문제 외에도, (교육감 선거 등의 사례를 고려하여) 선거 이후의 발탁, 정부 지원 사업 참여 등에 관해서도 지켜야 할 선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의 허들을 더 까다롭게 높이는 것도 의미 있을 수 있다. 특히 청소년, 이주민 등 정치행위가 제약당하는 이들의 권리에 관한 분야나, 정치적으로 비가시화된 집단의 운동영역에서는 더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약속들을 사회운동에서 여러 단체가 선거를 앞두고 공동으로 발표하고, 이를 어기는 정당 및 개인에게는 비판을 가하며, 성찰과 반성의 메시지를 내는 것은 의미 있는 행보가 될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다른 진보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른바 ‘인재 영입’ 같은 행태가 가장 민감하고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에 주된 예시가 되고 있을 뿐, 그 배경에는 사회운동과 정당정치 사이의 피상적이고 지속가능하지 못한 관계가 있다. 현재 사회운동과 진보정치는 과연 함께 운동하는 동료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떠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가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더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변화의 상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보다는 사회운동은 진보정당에 정책/법안의 이슈화나 통과를 위해 발의, 토론회 개최, 발언을 청하는 데 그치고, 진보정당은 사회운동에 지지와 후원금과 표, 인물을 제공해 주기를 기대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호 도구주의적인 관계 속에서는 진보정치나 사회운동의 힘은 오히려 약화될 수밖에 없다. 법안을 통과시키고 변화를 만들려면 기성의 거대정당의 힘이 더 중요하다. 지금 바로 당선 가능한 만큼의 표를 조직해 올 수 없는 사회운동 조직들은 진보정당이 기대기에는 너무 작아 보인다. 그러면서 앞서 말했듯 사회운동도 작아지고 진보정당도 운동성을 잃거나 작아질 가능성이 높기에 상황은 더 악화된다. 지나친 단순화지만 민주노동당 이후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진보정치의 존재 의의는, 사회운동과 연대하고 결합하며 ‘우리의 정치이자 우리의 운동’으로 사회와 정치를 동시에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공동의 전망을 가짐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한 신뢰와 공동의 전망이 없이는 진보정당은 여타 정당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회운동 활동가가 정치인으로 진출하는 일은, 그러한 전망과 기획이 공유된 연후에, 사회운동 단체에서는 지금 제도권 정치로 역량을 투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진보정치에서도 해당 사회운동의 역량과 자원을 더 깊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적절한 관계 맺기는 어떤 형태이며, 어떤 경로를 거쳐야 가능할까. 확실한 점은 그것이 지금까지의 구체적인 경험에 대한 성찰과 반성, 비판적 계승을 통해서만, 또한 직접 실천하고 부딪치고 수정해 가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결합했던 방식에 대해 재평가한다든지, 현재 존재하는 진보정당들의 여러 운동론과 유형을 분석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세하게 이야기하기는 한계가 있으나) 진보당의 경우, 여러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사회운동과 잘 결합하는 진보정치를 구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당·정파조직이 주도하여 사회운동 단체를 동원하는 듯한 모습, 대중추수주의 등 비판할 만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이나 모델 등에 대해서 비판하든 긍정하든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과거 일어났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짚고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지속가능하며 새로운 관계를 쌓는 일은 이러한 문제의식 공유와 논의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진보정치운동 입장에서도 더욱 깊은 숙고와 성의 있는 실천,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제안이 나와야 한다고 요청한다. 오늘 토론이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1월 20일 열린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토론회 - 지속 가능한 관계의 기반 함께 만들기' 자료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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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표인 공현 활동가의 발표문은 본문으로도 소개합니다.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관계
- 사회운동 입장에서 원칙 정립의 필요성과 다른 가능성 모색 제안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책임활동가
누적된 경험의 공론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이 꾸준히 사회운동(인권운동)과 정당정치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비판적 논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창립 초기 치명적이었던 관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단체를 처음 만들 것을 제안한 쥬리 활동가(강민진)가 단체 출범 이전, 2019년 정의당으로부터 ‘청년대변인’ 자리를 제안받았고, 대변인 임기 종료 후 지음 활동에 복귀할 것이라 약속하고 대변인에 취임하였으나, 이후 여러 갈등과 번복 끝에 2020년 초 지음을 그만두었고, 지음에서는 운동적 논의와 동의 없는 정당 영입 및 약속을 파기한 것을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막 출범을 준비 중이던 지음과 그 구성원들에게 큰 고통이었을 뿐 아니라 지음과 연관된 주변 운동 주체들과도 상당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지음은 “▲ 활동가의 공직 진출은 단체/운동의 운동적·정치적 결정이어야 합니다. ▲ 공직 활동은 단체/운동의 지지·협력과 판단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 사회운동은 정당정치 및 정부 참여와 다른 독립적 영역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라는 원칙을 제시하는 입장문(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성명, 운동의 공직/정치 진출에 대한 원칙 공유를 위하여, 2020년 4월 14일.)을 발표했다. 강민진이 연대체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공동집행위원장도 맡고 있었기에, 2020년 6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는 ‘대표성 있는 인물의 정당/공직 진출 시 거쳐야 할 절차’로 운영위 논의를 거칠 것, 조직의 의견에 반하거나 논의 없이 일어난 경우 조직과 개인을 분리시키는 입장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 등의 내용을 합의했다. 이후 5년이 넘게 지나서야 이렇게 이 문제의식을 더욱 구체화하고 더 널리 공유하게 된 것은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2020년의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처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인권운동의 인접운동인 교육운동과 교육감 선거의 경험이 있다. 2010년 이후로 다수 지역에서 소위 ‘민주진보 교육감’들이 당선되면서 교육운동의 추는 서서히 교육감 선거 및 행정으로 기울게 되었다. 함께 교육운동을 하던 교사 또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가 교육청 관료로 들어가면서 지역의 운동 주체들이 급감해 연대체 활동이 멈춘 적도 있다. 교육감 선거 때면 지역의 단체들이 다들 선거에 매진하지만, ‘민주진보 교육감’을 당선시킨 뒤에는 운동이 전혀 교육감의 행보를 제어할 수 없고, 현직 후보가 이후 ‘민주진보’ 타이틀을 독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비록 교육감 선거는 공식적으론 정당이 관여하지는 않지만, 이는 정치권력과 사회운동 사이의 불균형한 관계 그리고 사회운동이 선거와 행정에 동원되면서 초래되는 운동의 약화를 체감하게 된 사례였다. 그렇기에 2019년 5월, 나는 교육공동체 벗에서 ‘교육운동, 왜 자꾸 작아지는가’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선거와 공직 참여, 가능성일까 족쇄일까’라는 발제를 배치하기도 했다.
지음이 2020년 공식적으로 비판 의견을 밝힌 뒤에, 같은 결의 경험과 문제의식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여성공감이 배복주 전 대표의 행보에 관하여 “인권운동 활동가, 특히 현직의 대표가 정당의 제안으로 급작스럽게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의 문제, 진보적 장애인 운동에서 젠더 억압에 대한 이슈는 계속 주변화되고, 장애여성 단체에게 일임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채 선거 시기가 오면 장애여성 활동가가 대표성을 띠며 추천되는 정치참여가 반복되는 문제, 비례대표의 의미와 장애여성 정치세력화 등”의 문제에 대해 내부적 토론이 있었으나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입장(장애여성공감 배복주 전 대표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한 장애여성공감의 입장, 2024년 3월 9일.)을 발표했던 것이 대표적 예이다. 노동운동-민주노총에서도 전 간부 등의 정당 지지 선언, 노동부 장관 임명 등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던가. 그 밖에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소속 활동가가 갑자기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직으로 옮기면서 곤란한 상황 또는 불신이 초래된 경험, 대표자가 선거에 출마하자 그 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선거운동을 하느라 전화를 돌렸던(그리고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던) 경험, 단체의 비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개인 활동가가 거대정당 후보나 정부기구 위원으로 참여하며 논쟁이 생기는 일 등 사회운동 내에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어 왔다.
정당정치의 사회운동 식민화
우리는 사회운동이 정치에 고민 없이, 규범 없이 밀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식은 ‘운동이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거나, ‘정당은 운동단체가 아니다’라는 등의 말, 혹은 ‘사회운동은 모두 정치적’이라는 말 등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국가권력을 다루는(또는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정치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익적 가치로 꾸려지는 사회운동은 엄연히 그 성격과 영역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권운동/사회운동이 정치적[진보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물론 비정치성/중립성을 요구하는 잘못된 관념에 대응하는 맥락에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그간 이러한 말만 되풀이한 결과, 사회운동이 정치와 맺는 관계를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적절한 방식과 지침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가리고, 그저 제도권 정치에 적극 진출하는 것이 좋은 것이거나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단면적 생각을 부추기진 않았나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먼저, 사회운동의 주된 역할 중 하나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당의 주요 목적은 입법·행정에 관한 국가권력을 얻어내고 장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이상 권력을 쥐고 있는 정당과의 관계에서 사회운동은 원칙적으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이 정당과 지나치게 밀착하면 운동 고유의 목적의식과 가치로 정부나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것을 망설이게 되고 사회운동의 활동 방식과 의견이 왜곡될 우려가 크다.(사회운동단체 중에는 사실상 정당의 산하 또는 외곽 단체로 기능하는 곳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사회운동의 일반적 형태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이러한 경우 정당운동의 일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둘째 이유는 사회운동의 독립성 또는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니, 사회운동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운동과 정당이 밀착하거나 무분별하게 인적 유착이 일어날 때 운동단체는 특정 정파의 ‘외곽단체’, ‘관변단체’라고 인식되며 운동의 고유한 가치와 목적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사회운동의 의제나 성과는 언론이나 대중에게 정치의 공으로 여겨지곤 한다. 여기에는 사회운동의 부족 탓도 있으나 정당정치의 화법과 홍보방식 등의 탓도 있으며, 이런 문제는 인적 유착 속에 더욱 심화된다.(더 자세한 예시들은 1차 ‘사회운동과 정당정치 토론회’의 [난다 발제문, 사회운동과 정당 정치의 관계 - 쟁점과 문제의식을 짚으며 더 나은 기반을 만들어가기, 2025년 11월 23일]을 참고.) 그리고 편의상 ‘밀착한다’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사회운동과 정당 사이에서 조직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는 제대로 된 밀착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
애초에 사회운동과 제도권 정당 사이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입법·행정 영역에서 권력을 갖고 있고, 돈이든 명예든 사회적으로 인정이든 관심받는 정도든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정당 쪽에서 더 강한 인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내정당에서 어느 운동의 활동가를 영입하려는 것은 단지 개인적 이직이나 전직 제안이 아니라, 돈과 명예와 직위를 유인으로 그 운동의 상징성과 이미지와 역량을 가져가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생활세계에서부터 싹트고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회운동은 정치권력을 가진 정당에 의해 식민화(하버마스에서 차용한 단어임)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이러한 원리와 구도 아래 현재 한국 사회운동의 상당부분이 거대정당들에 종속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의 논의는 ‘진보정치’가 아니라 정당정치 일반, 특히 제도권 정당(집권정당이거나, 원내정당이거나, 기초자치단체장이라도 당선된 정당, 교육감 당선자의 세력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국가권력과 거리가 먼 정당, 원외 좌파 정당 등은 평소 현실에서는 사회운동 단체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정당들도 선거에 출마하고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잠재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 동일하게 대우하진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문제의식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이건 어찌 보면 그 정당들의 당선/집권 가능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것이다) 특히 이른바 ‘진보정당’이라고 분류되는 정당들 역시 원내정당으로 존재하면서 같은 문제가 발생, 반복되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에 이러한 논의에서 진보정치도 예외일 수 없다.
사회운동 활동가가 민주당에 영입되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잘못이고, 어느 진보정당(원내 진출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가정하자)에 영입되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지만 그 진보정당은 지지하거나 우호적이기 때문일 따름이다. 단체의 운동적 판단이 없이 개인이 운동의 성과를 가져가서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것도, 권력자가 되어서 변화를 이루겠다는 반민주적인 변명도 별 차이가 없다. 만약 진보정당에의 영입/진출이 용인된다면 민주당에의 영입/진출도 그 사람 개인의 정치 성향 및 이념에 따라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 ‘진보정당은 다르다’라고 말하려 한다면, 상대적인 진보성이나 국민의힘·민주당보다 낫다는 정도 이상으로 사회운동과 관계를 맺는 방식, 정치를 하는 방식 그 자체에서 질적인 차이가 있어야 한다. 즉 진보정당이 정말로 무언가 다른, 대안적 정치세력이라면 사회운동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며 사회운동을 도구화하거나 식민화하거나, 인재풀처럼 대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사회운동(인권운동)의 원칙 정립
우리의 문제의식은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경험하고, 서술한 것이다. 다만 지난 토론회에서는 진보정치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행태와 관계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며 ‘같이 망하는’ 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왜냐면 진보정치가 정말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이 함께 강화되어야 하는데 사회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은 스스로 발판을 부수고 좁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한편에선, 진보정당 자체적으로 내부에서 정당활동가와 정치인을 성장시키고 양성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외부로부터의 영입에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 역량과 통일성을 해치게 될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던지는 논제는 어쩌면 진보정치의 입장에서도 운동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진보정당이 진보정당답기 위해 풀어야 하는 숙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로 위협과 대처 필요성을 더 강하게, 가깝게 느끼는 것은 일단 사회운동 쪽인 듯하다. 단적으로 진보정치운동 주체들 쪽에서 먼저 이러한 논의를 제안하고 적절한 규범과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는 전혀 없다시피 했다. 진보정당들에서는 사회운동과의 부적절하고 도구적인 관계가 당장의 피해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근시안적 입장에서는 이득이 더 크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따라서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사회운동 측에서 먼저 거리와 윤리를 선언하고, 최소한의 규범과 판단 기준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정당 일반을 대상으로 하며 특히 원내정당을 비롯해 제도권 정당에 초점을 맞춘, 소위 ‘진보정당’이라 분류되는 정당들도 예외로 하지 않는 원칙과 규범이어야 한다. 정당정치에 의한 사회운동의 식민화에 제동을 걸고, 사회운동의 독자성과 존재 가치를 지키며, 대중적 신뢰를 회복해 나가고 사회운동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방편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기성 거대정당들이나 교육감 등 국가권력에 끌려가며 사회운동이 약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다.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사이의 적절하고 지속가능하고 서로에게 도움과 발전이 되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현시점에서는 ‘진보’나 ‘좌파’를 자임하는 정당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지음을 비롯해 몇몇 단체들은 단체의 대표나 상임활동가가 곧바로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당 당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단체 활동을 그만둔 뒤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가능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유사한 강령은 언론사 등에도 있다) 또한 지음 활동가 원칙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더라도 “정당 및 공직에 진출할 목적으로 지음 활동을 이력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지음 활동 과정에서 알게 된 개인정보, 보안 및 보호가 필요한 정보를 정당 활동 및 공직 활동에 이용하지 않는다. 활동에 의해 얻게 된 각종 사회적 자원의 이용에도 조심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인적 진출의 문제 외에도, (교육감 선거 등의 사례를 고려하여) 선거 이후의 발탁, 정부 지원 사업 참여 등에 관해서도 지켜야 할 선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의 허들을 더 까다롭게 높이는 것도 의미 있을 수 있다. 특히 청소년, 이주민 등 정치행위가 제약당하는 이들의 권리에 관한 분야나, 정치적으로 비가시화된 집단의 운동영역에서는 더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약속들을 사회운동에서 여러 단체가 선거를 앞두고 공동으로 발표하고, 이를 어기는 정당 및 개인에게는 비판을 가하며, 성찰과 반성의 메시지를 내는 것은 의미 있는 행보가 될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다른 진보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른바 ‘인재 영입’ 같은 행태가 가장 민감하고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에 주된 예시가 되고 있을 뿐, 그 배경에는 사회운동과 정당정치 사이의 피상적이고 지속가능하지 못한 관계가 있다. 현재 사회운동과 진보정치는 과연 함께 운동하는 동료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떠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가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더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변화의 상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보다는 사회운동은 진보정당에 정책/법안의 이슈화나 통과를 위해 발의, 토론회 개최, 발언을 청하는 데 그치고, 진보정당은 사회운동에 지지와 후원금과 표, 인물을 제공해 주기를 기대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호 도구주의적인 관계 속에서는 진보정치나 사회운동의 힘은 오히려 약화될 수밖에 없다. 법안을 통과시키고 변화를 만들려면 기성의 거대정당의 힘이 더 중요하다. 지금 바로 당선 가능한 만큼의 표를 조직해 올 수 없는 사회운동 조직들은 진보정당이 기대기에는 너무 작아 보인다. 그러면서 앞서 말했듯 사회운동도 작아지고 진보정당도 운동성을 잃거나 작아질 가능성이 높기에 상황은 더 악화된다. 지나친 단순화지만 민주노동당 이후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진보정치의 존재 의의는, 사회운동과 연대하고 결합하며 ‘우리의 정치이자 우리의 운동’으로 사회와 정치를 동시에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공동의 전망을 가짐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한 신뢰와 공동의 전망이 없이는 진보정당은 여타 정당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회운동 활동가가 정치인으로 진출하는 일은, 그러한 전망과 기획이 공유된 연후에, 사회운동 단체에서는 지금 제도권 정치로 역량을 투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진보정치에서도 해당 사회운동의 역량과 자원을 더 깊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적절한 관계 맺기는 어떤 형태이며, 어떤 경로를 거쳐야 가능할까. 확실한 점은 그것이 지금까지의 구체적인 경험에 대한 성찰과 반성, 비판적 계승을 통해서만, 또한 직접 실천하고 부딪치고 수정해 가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결합했던 방식에 대해 재평가한다든지, 현재 존재하는 진보정당들의 여러 운동론과 유형을 분석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세하게 이야기하기는 한계가 있으나) 진보당의 경우, 여러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사회운동과 잘 결합하는 진보정치를 구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당·정파조직이 주도하여 사회운동 단체를 동원하는 듯한 모습, 대중추수주의 등 비판할 만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이나 모델 등에 대해서 비판하든 긍정하든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과거 일어났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짚고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지속가능하며 새로운 관계를 쌓는 일은 이러한 문제의식 공유와 논의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진보정치운동 입장에서도 더욱 깊은 숙고와 성의 있는 실천,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제안이 나와야 한다고 요청한다. 오늘 토론이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