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은 국가폭력이다

국가가 조장한 체벌, 국가에 사과받자


학교에서 교육/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당연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제 학교에서의 체벌은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여러가지 형태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손이나 발, 도구를 이용한 폭력행위 외에도, 몸에 무리를 주는 자세나 동작을 시켜서 고통을 주고,

폭언이나 벌칙 등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훈육'하는 것은 인권침해입니다.


이는 비단 그런 방식으로 학생을 가르치려는 교사 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교사 혼자서 여러명의 학생을 '통제' 해야 하고, 

학생들은 결코 감당 가능하지 않은 양의 교육과정을 꾸역꾸역 따라가야 하는

교실의 풍경, 교육 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체벌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옛날에도 틀렸고, 지금도 틀린 방식입니다.

더 이상 교사가 인성이 나쁘다, 요즘 학생들은 싸가지가 없다로 서로 싸우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교사가 좀 더 여유있게 한 사람 한사람을 살필 수 있도록,

모두가 허겁지겁 교과 진도를 따라가느라 일률적인 모습을 강요받는 일이 없도록,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폭력적인 교육을 경험했던 사람/세대들,

그리고 여전히 겉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폭력적인 교육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학생들,

모두 국가에 책임을 묻고, 국가에 사과 받읍시다.





1. 국가는 학교에 대한 관리책임이 있습니다.


초ㆍ중등교육법 제6조에, 국립학교는 교육부장관의 지도ㆍ감독을 받으며, 공립ㆍ사립 학교는 교육감의 지도ㆍ감독을 받는다. 

라고 하여, 국가와 지방자체단체 행정 기관들이 각 학교를 감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에서 ‘인가’받아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서, 학교로 기능하기에 충분한지 검토하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학교 설비와 운영하는 교과목 등은 꼼꼼하게 따져 묻지만, 학생들의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인권침해적 내용이 담긴 학칙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징계의 내용 등은 학교의 ‘재량’이라며 인권을 보장하는 기준에 맞게 고치도록 강제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2. 한국은 1991년 국제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습니다.


한국에서 1991년에 비준한 유엔국제아동권리협약에는 제 19 조 (모든 형태의 폭력 및 학대로부터의 보호)라는 조문을 통해 아동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1.  당사국은 부모나 법정대리인, 기타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는 동안 모든 형태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 상해나 학대, 방임 또는 방치하는 대우, 성적 학대를 포함한 가혹한 처우나 착취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사회적 및 교육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2. 이러한 보호조치는 아동 및 아동 양육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사회계획의 수립과본 조 제1항에 규정된 아동학대 사례에 대한 다른 형태의 예방은 물론, 학대사례를 확인 보고 조회 조사 처리 추적하고 적절한 경우 사법적 개입이 가능한 효과적인 절차가 포함되어야 한다

 

더불어 유엔아동인권위원회의 8번 일반논평을 통해 근절되어야 할 폭력의 항목에 도구나 손으로 때리는 것과 더불어,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 경시하는 것, 창피를 주는 것, 모욕하는 것, 겁을 주는 것, 아동을 비웃는 것이 포함된다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국제협약/조약에 비준한다는 것은, 협약의 내용을 한국 안의 법과 동일하게 존중/적용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1991년에는 물론, 일반논평이 나온 2007년에도 그리고 현재 조차도 교육에서 폭력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교육부는 2011년 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체벌을 일부 금지한 이후로는 어떠한 적극적인 법적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3. 교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교육 제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한국 교육 현실 상,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체벌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 명의 교사가 일정한 수업시간동안 여러 명의 학생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기에 그 중 일부가 수업을 방해하거나, 집중하지 못하거나, 교사가 하라고 시킨 것을 하지 않으면 교실 안이 혼란스러워지고, 이를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생들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실에 조용히 앉아서, 교사가 지시하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같은 것을 하는 교육의 모습이 모두에게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교 시스템은 일부의 집중 잘 하고, 차분하고, 얌전하고, 학습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가 쉽게 흐트러지고, 다양한 것을 하고 싶어 하고, 딴 짓도 하고 싶어 하는 보통사람 또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야 합니다.

산만한 사람에게 벌을 주고 겁을 주어 차분한 사람으로 ‘가공하는’ 것, 그래서 학교 교과목들이 전달하는 지식을 잘 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교육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한 교실을 교사가 혼자서 감당해 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체벌이라는 폭력적인 경험을 국가의 책임 하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학생 모두가 경험하도록 방치하는 것 역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부당한 일입니다.

획일적이고 경쟁적인, 체벌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교육제도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글지음] 교사에게 통제와 폭력을 요구해 온 교육부 - 체벌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국가폭력이다

관리자
2023-10-25
조회수 53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투고하는 글입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교사인 조영선(연대하는교사잡것들)씨가 작성했습니다. 



교사에게 통제와 폭력을 요구해 온 교육부 

- 체벌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국가폭력이다

조영선 (연대하는교사 잡것들)


중등 교사로 교직 생활을 처음 할 때부터 계속 따라다녔던 주문이 있었다. '교사는 교실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악'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사전에 찾아 보니 '손안에 잡아 쥔다는 뜻으로,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다, 이런 자의성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바로 '교권'이었다.
정부가 교사의 체벌을 허용해 온 것도 이처럼 교사가 교실을 장악하고 학생들을 자의적인 통제하에 두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아동학대 교사 면책' 같은 경우도 아동학대로 보는 행위 중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 달라는 것인데, 그 정당성을 판단할 기준에 관해서는 누구도 논하지 않는다. 그저 교사가 하는 교육활동은 다 옳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 교사에게 기대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전히 통제가 일상인 학교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은 '매점에서 파는 닭다리를 팔지 말자'는 어느 교사의 제안이었다.
우리 학교 매점은 협동조합 매점으로 그나마 학생들의 취향에 맞는 품목이 많아 인기가 좋은 편이다. 특히 데워 먹을 수 있는 밥과 닭고기 등이 있어서 학생들이 좋아하는데 어느 날 교사가 데워먹는 음식이 너무 냄새가 나니 매점에서 아예 팔지 못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말을 부장 회의에서 꺼냈다. 요지는 학생들이 냄새가 빠지게 복도에서 음식을 먹고 오느라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늦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해결책이 아예 팔지 못하게하는 것이라니, 내 귀를 의심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너무나 진지하게 '팔게 할까, 못 팔게 할까'를 의논하는 회의 풍경이었다. 나는 그 논의 자체가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비굴하게 "학생들이 사실 닭다리 먹으러 학교를 올 수도 있다"라며 학생들에게 수업에 늦지 말라고 얘기하는 게 중요하지, 해당 음식 자체를 팔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교장이 훈화를 잘하자고 마무리해 닭다리는 퇴출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닭다리가 인권이냐'고 묻겠지만, 사실 어떤 규칙에 대해 논의를 하는 데 있어 다소간의 문제가 생긴다고 해 아예 '제공되던 것 일체를 철회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학교 말고 또 있을까? 이러한 논의 자체가 가능한 것은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를 묵인하거나 장려해서라도 수업 시간에는 늦게 들어와서는 안 된다, 교사의 편의를 위해 학생을 통제해도 되고 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에게 '물리적 제지'를 할 것을 요구하는 야만


지난 8월 17일 교육부가 발표해서 학교 현장에서 실행 중인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아래 생활지도 고시)'의 일부인 '수업 중 격리'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격리가 된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방해되는 학생을 '처리해 버리는' 방식이 국가적으로 추진되고 교사단체들도 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퇴출되는 모습을 학생들이 봐야 교실 내 질서가 유지된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생활지도 고시의 내용을 학교 규칙에 반영하도록 교칙 등을 개정하라고 명시된 기한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공문에는 학교 교칙이 바뀌지 않았어도 고시의 내용을 우선해서 조치하라는 내용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실제 학생을 통제하는 '물리적 제지'나 '수업 중 격리'가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나 합의된 기준 없이도 집행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교육부는 카드뉴스까지 만들어 공문으로 보냈다. 이 모든 것이 교육부가 생활지도 고시의 내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첫 공식 의견 청취 자리였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 마련을 위한 포럼이 있었던 8월 8일 이후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렇게 학교 규칙을 민주적으로 제·개정하는 과정이나 절차마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 학교 규칙에 근거한 지도를 모두 아동학대 행위로 보지않도록 면책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교사의 행위를 건들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 이런 전근대적인 접근 방식은 사실상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은 교육의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닐뿐더러, 교실의 질서를 위해 언제든 지긋이 밟아줄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한 것이다.
21세기에 사실상 교사에게 '물리적 제지'라는 폭력을 정부가 강요하는 야만이 펼쳐지고 있다. 그 명분은 마치 교사들을 위해서라고 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교실을, 학생들을 교사들이 장악하고 통제해야만 한다는 의무의 요구다. 체벌은 시작부터 그랬지만 현재도 국가 폭력이다.



사진 설명 : 2023년 8월 24일, "모두를 위협하는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안 폐기! 근본적 대책 촉구, 교육주체 공동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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